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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62
한자 柳東爀
영어음역 Ryu Donghyeok
이칭/별칭 여윤(汝尹),금우(琴愚),유동혁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1년연표보기
몰년 1920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윤(汝尹), 호는 금우(琴愚)이다.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임동면 임동중학교 뒤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류동혁은 1907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 설립된 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협동학교는 안동의 혁신 유림인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류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이 참여하여 인재를 양성한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이었다. 그러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그는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류동혁은 1919년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임동면 만세시위는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전개되었다.

시위 주동자들은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류동혁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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