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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안동문화대전 > 안동의 마을 이야기 > 하회리 > 세계가 주목하는 물돌이동 사람과 자연과 문화 > 선비와 인물을 자랑하는 풍산류씨 가문

  • 임진왜란을 예언하고 대비한 이인(異人) 겸암 선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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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은 효자이자 이인(異人)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겸암은 퇴계가 향리 도산에 서당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고 하는데, 퇴계 또한 그의 학문적 자질과 성실함에 감복하여 총애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부용대 남쪽 기슭에 정사를 지어 학문에 정진할 때 ‘겸암정사(謙巖精舍)’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퇴계였다. 겸암은 그 이름을 귀하게...

  • 임진왜란을 이겨낸 구국영웅 서애 선생과 『징비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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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애 류성룡은 겸암 류운룡의 아우로서 임진왜란의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선조 때의 명신이자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학자이다. 21세에 형 겸암과 도산서당을 찾아가 퇴계의 가르침을 받았고, 23세에 사마시(司馬試)의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했으며, 성균관에 입학하던 25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서애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고향의 전원과 독서를 즐겨 여러 차례 사직...

  • 이인 겸암 선생과 영의정 서애 대감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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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마을은 고려 후기 이후 지금까지 풍산류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하회가 전국 각지에 양반마을로 알려지면서 나아가 명문세가의 마을로, 또는 유교문화의 전형적 마을로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겸암과 서애로부터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겸암과 서애에 얽힌 전설도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전설 속에서 겸암은 한결같이 이인(異人)으로 묘사되어 서애보다 탁월한 인물로 이야기...

  • 야쿠르트 마을의 선비수염 자랑하는 장수할아버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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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하회마을이 널리 알려진 일이 있었다. 한국야쿠르트가 기업의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장수마을과 야쿠르트의 이미지를 결합한 ‘장수마을 캠페인’을 전개했는데, 그 중 한 편이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했던 것이다. 이 캠페인으로 하회마을은 장수마을의 이미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회마을이 한 기업 광고의 배경이 된 까닭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예스러운 하회마을의 이미지...

  •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방문한 세계적인 전통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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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1일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영국여왕이 한국의 많은 곳을 제쳐두고 하회마을을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하회마을은 고려 후기부터 다양한 성씨들이 터전을 이루고 살아왔으며, 지금도 풍산류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살아 있는 마을이다.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민속촌과 다르게 하회마을은 주민들의 터전이자, 각종 문화유산들이 보존·전승되고 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