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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81
한자 柳淵成
영어음역 Ryu Yeongseong
이칭/별칭 경옥,유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57년연표보기
몰년 1919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옥(景玉)이다. 아버지는 안동의진에 참여한 류지호(柳止鎬, 1825~1904)이며, 류연박(柳淵博, 1844~1925)이 형이다. 1857년(철종 8)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류연성은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에서의 3·1 만세 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류연성은 1919년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류연성류동수(柳東洙)·류교희(柳敎熙)·박진성(朴晋成)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준비하고, 자신은 임동면 대곡동과 위동 주민을 동원하여 참여시킬 책임을 맡았다. 드디어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류연성은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위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임동면 주재소로 끌려갔다. 이에 시위 군중은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류연성은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을 거쳐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 받았다. 그는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9월 25일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류연성임동면 편항시장 만세 시위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은 형량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포장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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