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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55
한자 金明仁
영어음역 Gim Myeongi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9년연표보기
몰년 1966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경력 계명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김명인의 아버지는 안동면 2차 만세 시위를 주도한 김계한(金啓漢, 1867~1956)이다. 1899년(고종 3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고, 법상동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김명인은 기독교 신자로서 계명학교를 거쳐 1907년 설립된 안동의 근대 중등교육기관인 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20세 때 대구 교남학원 고등과에 입학, 졸업하였다. 김명인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인 김계한과 함께 1919년 3월 18일 안동면 2차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 2차 만세 시위는 계획 단계에서 안동교회와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김익현(金翊顯)·김계한 등은 서로 의논하여 3월 18일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였다.

드디어 3월 18일 낮 12시 삼산동 곡물전(지금의 신한은행과 농협 안동지부 중간 지점) 앞에서 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들은 안동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다가 3월 19일 0시 50분 무렵 2,500여 명이라는 시위 군중들이 모여들자 일제 식민 통치 기관인 군청, 경찰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등에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김명인은 1921년 1월 안동 계명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에게 「망향가」·「소년행진곡」·「용진가」 등 애국적 창가를 가르치고, 일제의 불법 침략 사실을 인식시키며 독립 정신을 고취시키다가 1921년 2월 3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3월 1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4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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