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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14
한자 權壽億
영어음역 Gwon Su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성별
생년 1856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안동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856년(철종 7)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사망 연도는 알 수 없다. 권수억은 1919년 안동면에서 주민들이 대거 참여했던 만세 운동에 미처 참여하지 못하자, 뒤에 홀로 만세 시위를 벌였다. 3·1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안동면 시위는 안동교회송기식을 비롯한 유림의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3월 18일 오후 6시경에는 100여 명의 시위 군중들이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튿날인 3월 19일 새벽 1시경에는 3,000여 명으로 늘어난 군중들이 군청, 경찰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으로 몰려가 애국지사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투석전을 벌였다.

3월 18일의 안동면 제2차 시위에 이어 장날인 3월 23일 일어난 3차 시위는 안동군 전체 면민들이 대거 참가하여 더욱 격렬한 시위를 펼쳤다. 오후 8시경 3,000여 명의 시위 군중들이 경찰서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을 포위하고 투석으로 저항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13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2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3월 18일과 19일에 일어난 안동면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권수억은 다음 날 단독으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권수억은 3월 20일 오후 홀로 안동경찰서를 찾아가 혼자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자료(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1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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