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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45
한자 宋基植
영어음역 Song Gisik
이칭/별칭 치공(穉鞏),해창(海窓)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78년연표보기
몰년 1949년연표보기
본관 진천
대표경력 봉양서숙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치공(穉鞏), 호는 해창(海窓)이다. 187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서 태어났다. 1913년 송천동에 설립된 봉양서숙(鳳陽書塾)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송기식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이끌었다. 안동면 2차 시위는 안동교회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었다. 3월 18일 장날 낮 12시경,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과 농협안동지부 중간지점) 앞에서 기독교인 30여 명이 부르는 만세의 함성이 울리자 송기식류동붕(柳東鵬)·송장식(宋章植)·송홍식(宋弘植)·권중호(權中鎬) 등 유림들과 시위대를 이끌고 여기에 합세하였다.

장터에 모인 다수의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던 송기식은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 받았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5월 2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6개월의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저술 및 작품]

『해창문집(海窓文集)』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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