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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동제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332
한자 素山洞祭堂
영어의미역 Sosan God Shrine
이칭/별칭 서낭당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유적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개설]

소산 동제당은 상당인 산신당(주산당, 주산어른)과 하당인 골맥이당(수구맥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원적인 당의 구성은 한국 농촌사회의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상당과 하당을 모시는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구별 짓는 관행은 그리 흔하지 않다. 상제당 제관은 대부분 안동김씨가 맡고, 하제당 제관은 다른 성씨가 주로 맡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 경부터 상제당은 그대로 하지만 하제당 제관으로 안동김씨도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굿패들이 걸립을 하거나 금기를 함께 지키며 상하 동제에 함께 참여하지만, 그 순서는 항상 주산의 상제관이 우선이다. 정월 보름날 굿패들은 원도가에서 상제관을 모시고 주산으로 가서 굿을 친 다음 상제관이 다른 준비를 하는 동안 얼른 하제관이 있는 골맥이당으로 내려와서 굿을 친다.

상제당의 제물은 생닭 한 마리와 시루백편 그리고 제주이다. 하제당에서는 12골 골맥이를 대상으로 제를 지낸다. 이는 마을을 이루는 12골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제당에서 올리는 제물은 대부분 12개씩 구성되어 있다. 즉 생소고기 꼬지 12개, 명태 12마리, 청어 12마리, 그리고 멸치와 볶은 콩 두세 되 등이다.

[위치]

주산의 산신(소나무)과 마을 어귀에 있는 수구맥이 동신(느티나무)을 함께 섬긴다. 하제관은 본래 삼구정 앞에 있는 느티나무였는데, 안동김씨 가문에서 삼구정 앞에 있는 것이 번잡스럽다고 마을 밖의 동구나무로 옮겨 갔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가는 큰길가에 있어 부작용이 많이 생기므로 1950년경에 다시 지금의 삼구정 앞의 느티나무로 하제당을 옮겨왔다. 마을 세거 성씨의 말 한 마디면 상민들의 제당도 옮길 수 있었지만 역시 상민들의 의견을 다시 수용하게 된 것이다.

[형태]

본래 상당은 밤나무가 신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밤나무가 6·25전쟁 수년 전쯤 고사해 버리자 근처의 소나무를 신체로 섬기게 되었다. 하제당은 약 500년 된 큰 느티나무를 신체로 하고 있다. 수구나무 또는 동구나무라고도 한다.

[의례]

지신밟기가 끝나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해질 무렵부터 풍물꾼들이 굿도가에 모인다. 여기서 대보름굿을 준비하는데, 먼저 풍물을 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이때 마을의 우물을 만나면 샘굿을 한다. 굿도가에 돌아와 쉬면서 막걸리로 목을 축인 후 다시 풍물을 치며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이렇게 두 번을 돈 후 세 번째 차례에는 “불을 끄시오.” 하면서 본격적인 굿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금기를 지키며 정성을 다할 것을 알린다. 또한 사람을 보내 상·하제당 제관을 모셔오라고 한다. 마을을 세 바퀴 돌고 나면 보통 10시쯤 된다고 한다. 풍물패와 제관들은 도가집에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 마을을 세 바퀴 돌아 부정을 가시고 정성을 드린 뒤, 본 굿을 지내기 위해 출발한다.

제관과 제물을 지게에 진 유사, 그리고 풍물패들이 함께 마지막 네 바퀴째를 돈다. 이때에는 특별히 마을의 12골마다 정지하여 인사를 드린다. 상제당에서 축을 읽기 시작하면 풍물패는 얼른 달리다시피 하며 풍물을 치며 내려가 하제당에 도착한다. 때를 맞춰 상제당과 하제당이 함께 소지를 올린다. 이 때 반드시 소지를 함께 올려야 마을 전체가 복을 받는다고 한다.

[현황]

소산동의 마을굿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제문(축문)을 한글로 작성하는 것이 이러한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소산동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화를 통해서 마을굿을 지속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2000년 정월 대보름에 사용한 「소산동신제문(素山洞神祭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경진정월계사삭십오일정미 유학 김호규는 목욕재계하고 절하며 감히 주산신령께 고하나이다. 학가산이 서쪽으로 내달아 정산의 높은 산봉우리 정기받은 소산이로소이다. 이곳에 사는 소산동민은 신의 도움에 의지하여 밝고 착하게 위엄과 복을 이루어 그 덕을 받고 있음이오이다. 이제 새해를 맞아 법도에 따라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올려 간절히 소원을 비나이다.

신령께서 강림하셔 우리 동민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롭게 덕을 흠뻑 입게 하여 주시고 우순풍조되게 하여 오곡백과 풍성하고 사람마다 집집마다 근심걱정 없게 하고 작은 꿈도 이룩하여 태평세월이 사방에 미치도록 상서로움 드러내어 우리 모두 복을 받고 우리 마을 나날이 융성발전토록 하여 주소서. 신령께서 들으시고 영기발양하시어 소원을 성취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 한뜻으로 바른 삶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저희들의 조그마한 정성을 표해 맑은 술과 약간의 음식물을 올리오니 굽어 살피시고 흠향하소서.”

1999년까지 사용했던 「주산제문(主山祭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갑술정월정묘삭십오일신사 안동 김재현 재욕백배소고우 주산지신왈학가서치정수찬완종정육영우 소요산일구소산일리유신시주범차거민실뢰신우 기명차성여천무극궐유소고작위작복금당세수경 천명인생비주향길일량진유 부영부감흔충장환 고일동시고망망용망호서강기역시수파축랑서 익서미시유아신영불치개서기발련수구광제 정리숙청운소무산환원반본영불판환질병재해 구축무변가풍편연 여전쟁선농불지시아가양양 풍년유임천창만상육축번식기축차장가구현송 원요반순가급인족담소장춘태평연월달우사린 범궐조화막구신방어천만년영뢰공덕계수헌 성서사감격 상 향(維歲次甲戌正月丁卯朔十五日辛巳 安東 金載顯 齋浴百拜昭告于 主山之神曰鶴駕西馳井峀巑岏鍾精毓靈于 素耀山一區素山一里惟神是主凡此居民實賴神佑 旣明且聖與天无極厥有所告作威作福今當歲首敬 薦明禋牲肥酒香吉日良辰有 孚盈缶敢訢衷膓環 顧一洞視古茫茫龍亡虎逝綱紀亦施隨波逐浪胥 溺胥靡時惟我神寧不致慨庶幾發憐垂捄匡濟 整理肅淸雲消霧散還元返本永不判渙疾病災害 驅逐無邊駕風鞭연(雨延 )與電爭先農不支時我稼禳禳 豊年有稔千倉万箱六畜繁殖旣蓄且長謌謳絃誦 援撓返諄家給人足談笑長春太平烟月達于四隣 凡厥造化莫九神方於千万年永賴功德稽首獻 誠庶賜監格 尙 饗)”

제문의 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산동 역시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보다 능동적으로 이를 극복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시대 변화를 극복하는 전통의 지속으로는 단연 풍물을 꼽을 수 있다. 풍물패가 제의의 전체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는 마을의 곳곳을 마을굿의 품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기도 한 것으로 파악된다.

풍물패가 열두 골맥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하면 제자리에 서서 흥겨운 장단으로 새해의 시작을 고한다. 하제당에서 올리는 12개의 제물들도 바로 이들을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12골을 두루두루 지신밟기를 하면서 하제당에 이르고, 마침내 대동소지·우마소지·개인소지 등을 올린다. 당주집에 다시 모인 주민들은 당주를 중심으로 제사에 차린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으면서 동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때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별도로 음식을 싸서 반드시 맛을 보도록 한다. 과거에는 음식이 귀하고, 특히 제사에 올리는 음식은 일반인이 평소에 먹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 음복은 나누는 마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또한 멸치와 볶은 콩은 조심씩이라도 마을 사람 모두가 음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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