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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736
한자 李運衡
영어음역 Yi Unhyeong
이칭/별칭 중약(重若),백광(白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2년연표보기
몰년 1972년연표보기
본관 고성
대표경력 서로군정서 비밀특파원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운형(李運衡)은 본관이 고성(固城)이고, 자는 중약(重若)이며, 호는 백광(白光)이다. 1892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조카이다.

[활동사항]

이운형은 1907년 세워진 경상북도 북부 지역 최초의 중등학교인 협동학교를 1기로 졸업하였다. 이후 1911년 김동삼, 이상룡 등 안동 지역 인사들과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19년 2월경 귀국한 이운형은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한 뒤 다시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운형은 국내외를 오가며 서로군정서의 비밀 특파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1월 이운형은 서울 권농동 남효원의 집에서 황종화·이영봉·김규열 등과 수차례 만난 뒤 임시정부 요원 강태동(姜泰東)에게서 독립 문서를 전해 받고, 1920년 3월 독립 문서를 가지고 곧바로 대구로 내려가 최익무(崔翼武)에게 전하면서 대구 일대에 배포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이운형은 또다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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