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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93
한자 李康郁
영어음역 Yi Gangu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74년연표보기
몰년 1945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1874년(고종 1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서 태어나 1945년 사망하였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이강욱은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에서의 3·1 만세 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이강욱은 1919년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이강욱류동수(柳東洙)·류교희(柳敎熙)·박진성(朴晋成)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준비하고, 자신은 홍명성(洪明聖)과 함께 임동면 갈전동 주민을 동원하여 참여시킬 책임을 맡았다. 드디어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그는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또 시위 군중은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이강욱은 홍명성과 함께 영양군 청기로 이동하여 3월 24일 청기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또 영양군 입암의 이원오(李元五) 집에서 임동면 편항장터 시위를 주도했던 류동수와 합류하여 3월 25일 영양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체포된 이강욱은 1920년 4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는 임동면 편항시장 만세 시위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 가운데 높은 형량이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포장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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