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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283
한자 烏川里
영어음역 Ocheon-ri
이칭/별칭 외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선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10.97㎢
총인구(남, 여) 240명(남자 119명, 여자 12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18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오천리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가 뿌리 내려 사는 마을이다. 광산김씨는 원래 전라도 광산의 토성(土姓)으로 고려 후기 중앙 관계에 진출하면서 명문으로 발돋움하였다. 그 한 파가 경상도 안동으로 옮겨 와 풍천의 구담(九潭), 와룡가구(佳邱), 예안의 오천 등에 세거하여 왔다.

광산김씨 오천리 입향조는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 1455~1534)로 풍산(豊山) 도양골[道陽谷]에 살다가 연산군 때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오천으로 옮겨 왔다. 아들 김연(金緣)김유(金綏)중종 때 명신으로 이름을 얻었고, 그 자손들은 번창하여 가문의 이름을 높이면서 진성이씨·봉화금씨·안동권씨 등과 통혼함으로써 영남 사림의 한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예안 읍지(邑誌)인 『선성지(宣城誌)』 시거(始居) 편에는 “고려 때 지인(知印) 황재(黃載)가 마을 입구 산남(山南) 벌판에 시거하였으며, 김효지(金孝之)가 안동 풍산으로부터 들어와 황재의 사위가 되어 이곳에 살았으나 아들이 없어 조카 김간(金澗)으로 후사를 이었다. 그러나 김간 역시 아들이 없어 종손인 생원 김효로가 모시고 봉양하도록 하여 예안 고을 사람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천리한강(寒岡) 정구(鄭逑)오천 주민들 모두가 군자(君子) 아닌 사람이 없다고 감탄한 이후로 군자리로 일컬어져 왔다. 특히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오천 출신 일곱 사람의 인재를 ‘오천칠군자’라고 불렀는데 후조당 김부필(金富弼), 읍청정 김부의(金富儀), 산남 김부인(金富仁), 양정당 김부신(金富信), 설월당 김부륜(金富倫), 일휴당 금응협(琴應夾), 면진재 금응훈(琴應壎) 등이다.

[명칭유래]

오천(烏川) 주변에 있어 마을 이름도 오천리가 되었다. 오천은 우리말로 ‘외내’라고도 한다. 외내는 마을이 수몰되기 전 마을 앞을 흐르는 한 줄기 시내가 맑은 개울을 이루면서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낙동강으로 흘러든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또 물이 맑을 때 물 밑에 깔린 돌을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고 하여 오천이라 하였는데, 까마귀 ‘오(烏)’자를 이두 식으로 읽으면 ‘외’자와 통한다고 한다.

오천리군자리라고도 한다. 한강 정구가 안동대도호부사로 있을 때 오천을 방문한 다음 “한집안 식구로서도 다 착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오천 주민들 모두가 군자 아닌 사람이 없구나” 하고 감탄하였다고 하여 그 이후부터 오천군자리로 일컫게 되었다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 예안군 읍내면(邑內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양동과 안동군 북선면 외감애동(外甘厓洞), 안동군 동후면 나소곡(羅所谷) 각 일부가 병합되어 오천동이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가 수몰되었고, 1974년 나머지 지역은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대부분이 안동호에 잠겼고, 나머지 마을들은 모두 나지막한 구릉지에 흩어져 있으며, 오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마을 앞으로 일자봉(一字峰)이 솟아 있고 아래에 먹골 골짜기가 있다. 먹골 동쪽으로 서당골·버더박골·중리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서당골은 옛날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가 서당을 지어 후진을 가르쳤던 곳이다. 북쪽으로는 발우봉(發寓峰)이, 맞은편 오천에는 월영대(月影臺)가 있다.

[현황]

안동시에서 북쪽으로 약 16㎞ 떨어져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0.97㎢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18세대에 240명(남자 119명, 여자 12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오천1리·오천2리·오천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마을이 안동호에 잠기면서 새로 조성된 군자리를 비롯하여 고누골·조마리(曺馬里)·이사(里巳)·우모실·방잠·양정·신역·당고개·지삼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안동시에서 북쪽으로 도산서원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20㎞쯤 가면 오른쪽 산자락에 광산김씨 전통 가옥이 밀집되어 있는 군자리가 있다. 광산김씨 예안파의 600년 숨결을 간직한 마을이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때 종택·묘우·정자·강당 등의 중요 건물들을 약 2㎞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여 형성된 마을로, 고건축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다.

오천의 서쪽 골짜기에 고누골이 있고, 그 서쪽 조마리는 조씨(曺氏)가 많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찍이 말을 먹인 일이 있어 조마리(早馬里)라 하였다고도 한다. 오천 서쪽에 있는 또 하나의 골짜기에 이사가 있고, 오천 북서쪽에 우모실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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