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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리 광산김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170
한자 烏川里光山金氏集姓村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 of Gwangsan Gim Clan in Ocheon-ri
이칭/별칭 외내,군자리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동성마을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광산 김씨 집성촌.

[명칭유래]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 밑에 깔린 돌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고 하여 오천(烏川)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고려시대 광산김씨 안동 입향조인 김무의 셋째 아들인 김효지(金孝之)가 오천리에 살고 있던 평해황씨인 황재(黃載)의 사위가 되어 풍산 구담리에서 옮겨 옴으로써 광산김씨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김효지에게 아들이 없어 종손자(從孫子)인 김효로(金孝盧)가 뒤를 이어 살았고, 김효로의 아들 김연(金緣)탁청정(濯淸亭) 김유(金綏)가 이름을 크게 떨쳐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김연의 장남인 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 차남인 읍청정(挹淸亭) 김부의(金富儀), 김유의 장남인 산남(山南) 김부인(金富仁), 차남 양정당(養正堂) 김부신(金富信), 3남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 등이 크게 이름을 떨쳐 영남사족의 문호를 확고히 세웠다.

[자연환경]

수몰되기 전의 오천리는 마을 앞으로 낙동강이 활시위 모양으로 흐르고 희고 고운 모래톱이 펼쳐져 있었다. 마을 뒤쪽으로는 태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높고 낮은 산들이 보기 좋게 이어져 있었다.

[현황]

오천리는 오천1리의 군자리·방잠, 오천2리의 조마리·이사·우무실, 오천3리의 양정·신역·당고개·지삼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100가구가 살고 있다. 수몰 전 오천리에 있던 주요 유적을 약 2㎞ 떨어진 곳으로 옮겨 조성한 외내군자마을은 고건축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다. 관련 유적으로는 김유탁청정, 김부의읍청정, 김부인의 산남정 등이 있다. 김유가 저술한 『수운잡방(需雲雜方)』은 귀중한 전통 요리서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k******* 김유ㅡㅡ>김수金綏
편안하다 수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동국학진흥원등 관련 기관에 유선 문의 결과, 문중에서도 및 지역에서도『수운집방』의 저자는 "김수"가 아닌 "김유"가 맞다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이에 현행 정보를 유지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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