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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576
한자 象牙洞
영어의미역 Sanga-dong(Myeongryun-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상아동(명륜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석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동
면적 4,416,982㎡
총인구(남, 여) 213명(남자 115명, 여자 98명)
가구수 90가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지형이 상아(象牙)처럼 생겨서 상아동이라 하였다. 코끼리 이빨에 해당하는 자리에 큰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 오는데 지금은 빈터로 남아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안막동에 편입되었다가 1947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상아동이 되었다.

[자연환경]

안막동에서 상아골 쪽으로 넘어가는 곳에 안막재가 있다. 안동시에서 약 2㎞ 떨어져 있으며 지금은 집들이 많이 들어섰다.

[현황]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416,982㎡이며, 2011년 6월 30일 현재 총 90가구에 213명(남자 115명, 여자 9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동인 명륜동 관할로 상앗골, 번뎅이, 놋가마골, 성낭골, 잔자라기, 진몰개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상앗골(일명 쌍아골)은 상아동의 원 마을이다. 번뎅이는 버굿재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골짜기 어귀인 진몰개에서 거리가 멀다 하여 먼데이라고도 한다.

놋가마골(일명 놋감골, 가마골, 진모래아랫골)은 마을에 살던 부자가 장례를 치를 때 놋가마를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모래 아래쪽에 있으므로 진모래아랫골이라고도 한다. 성낭골은 마을에 돌이 유난히 많다고 하여 석낭골[石郎谷]이라 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었다. 잔자라기(일명 잔다라기)는 마을에 아주 작은 논과 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작은 농토를 확장 정리하여 활용하고 있다. 진몰개[일명 진모래, 장사리(長沙里)]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에 긴 모래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인 버굿재는 옛날 와룡, 도산, 예안에서 안동의 시장으로 소를 팔러 오다가 풀이 많은 이 고개에서 풀을 뜯어 먹여 소의 배가 버구처럼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 고개에 푸른 풀이 많았으므로 청머리재, 안막동에서 상아골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여서 안막재라고도 한다. 요즘은 안막재라는 명칭으로 많이 불린다.

진몰개에는 삼태사와 견훤에 관련한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견훤은 원래 지렁이의 화신이어서 전시에는 모래땅에 진을 치고 신변이 위태로워지면 지렁이로 변해 모래 속으로 들어가서 웬만해선 견훤을 물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삼태사가 왕건을 도와 현재의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견훤은 동쪽 낙동강가 모래땅에 진을 치고 맞섰다.

싸움이 수십 번 계속되었는데도 끝이 나지 않고 견훤은 싸움을 하다 불리해지면 모래 속으로 기어 들어가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에 삼태사들은 전략을 세워 흐르는 강을 막아 못을 만들고 못 속에 소금을 넣어 소금물로 만들어 놓고 다시 전투에 나섰다. 전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였는데 견훤은 점점 불리해지자 당황하여 지렁이로 둔갑하더니 모래 속으로 기어들었다.

삼태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소금물이 가득 찬 못을 터뜨리니 내를 이루면서 흘러내린 소금물이 모래 속으로 흘러들어 지렁이로 변한 견훤도 어쩔 도리 없이 겨우 목숨만 건져 안동 땅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지금도 이 소금물이 흘렀던 곳을 간수내(서지리에 있는 마을로 음이 변하여 가수내로 불린다)라 하고, 견훤이 숨었던 모래를 진모래라 한다. 문화 유적으로 용정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낮아지는 능선 완만한 곳에 동악사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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