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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점장이 덕에 개국공신된 맹사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417
한자 奉事占-德-開國功臣-孟思誠
영어의미역 Maengsaseong Who Became Dynastic Foundation Merit Subject Due to the Blind Fortunetelle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인물담
주요 등장인물 맹사성|봉사 점장이|처녀|여종|안부인
관련지명 광화문|삼청동
모티프 유형 봉사 점장이의 도움|맹사성의 출세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서 개국공신 맹사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조선 전기의 재상으로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이다. 세종(世宗, 1397~1450) 때 우의정·좌의정을 지냈으며, 황희(黃喜, 1363~1452)와 함께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품이 청백하고 검소하였으며, 『태종실록(太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작품에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1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서 주민 김시규(남, 65)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91년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한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에 재수록하였다.

[내용]

맹사성은 어릴 때 부모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서울 장안으로 돌아다녔다. 그때 서울 장안에는 점을 아주 잘 치는 봉사가 하나 있었다. 맹사성은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까닭에 봉사의 집에도 자주 왕래하곤 하였다. 봉사는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맹사성의 말씨며 행동을 알고는 아주 이상하게 여겼다. 그래서 하루는 봉사가 “얘, 사성아!” 하고 맹사성을 불렀다.

맹사성이 “예” 하고 대답하자 봉사는 “네가 지금 올 때도 갈 때도 없는 신세니 이제 그만 우리 집에 머물러 있거라”라고 말하였다. 맹사성은 이에 “예, 그렇게 하지요”라고 대답하였다. 맹사성은 봉사의 집에 머물면서 몇 해 동안 봉사의 심부름도 하고, 점치러 오는 사람 심부름도 하며 지냈다.

하루는 저녁때 맹사성이 앉아 있었는데 봉사가 “사성아, 저기 광화문 밖을 알지?” 하고 물었다. “예, 압니다”라고 맹사성이 대답하자 “거기 가면 전부 송장을 묻지 않느냐?” 하고 봉사가 말하였다. “예. 그렇지요.” 맹사성이 대답하자 “너 오늘 저녁에는 꼭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라고 봉사는 말하는 것이었다. 맹사성은 “그렇게 하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때는 역질(疫疾)이 돌던 시기였다. 역질에 걸려 죽으면 시신을 덕(널이나 막대기 따위를 나뭇가지나 기둥 사이에 얹어 만든 시렁)에 올려놓고 3일 정도 지나 공동묘지에 갖다 묻곤 하였다. 어느 날 벼슬을 많이 한 재상집 처녀가 역질에 걸려 죽어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봉사는 맹사성을 불러 “오늘 밤에 공동묘지에 가면 누군가 장사를 지내고 있을 거다. 장사를 다 지내고 사람들이 간 뒤에 그 묘를 파 가지고 송장을 업고 오너라”라고 말하였다.

맹사성이 공동묘지에 가 숨어 있으니 과연 봉사의 말대로 밤이 이슥해진 후에 대여섯 명이 상여를 들고 나타났다. 그 사람들은 상여에서 관을 들어내서 장사를 지내고는 시신을 묘에 묻고 가 버렸다. 맹사성이 봉사가 시키는 대로 묘를 파 보니 비단에 뚤뚤 말아 싼 송장이 하나 있었다. 맹사성은 송장을 들고 봉사의 집으로 돌아왔다. 봉사는 기다리고 있다가 맹사성이 송장을 갖고 오자 “이 송장을 안아 품고서 아랫목에 드러누워 있거라” 하고 말하였다. 맹사성은 봉사가 시키는 대로 송장을 안고 아랫목에 가만히 누웠다.

얼마 후 봉사가 “송장 가슴에 손을 넣어 봐라” 하고 맹사성에게 시켰다. 맹사성이 그대로 따라하자 봉사가 말하였다. “손을 넣어 보니 감각이 어떠하냐?” “네, 좀 따스합니다.” 봉사는 “그만 하면 되었다. 손을 빼고 조금 더 드러누워 있거라” 하였다. 얼마 안 되어 봉사가 또 말하였다. “손 한 번 다시 넣어 보아라.” 맹사성이 손을 넣어 보니 송장의 맥박이 뛰고 있었다. 이에 봉사는 “밖에 나가서 물을 끓여 와서 갖다 먹여라” 하였다.

맹사성이 물을 끓여 와 송장 입에 떠 넣으니 송장이었던 처녀가 일어났다. 처녀는 나이 스무 살 정도의 용모가 뛰어난 미인이었다. 또 재상집의 처녀라 비단옷이며 값진 패물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처녀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누구네 집인지, 또한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처녀가 정신을 가다듬고 가만히 보니, 총각 하나가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물도 떠 주고 밥도 해 주고 바삐 움직이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 얻어먹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처녀는 맹사성을 도와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처녀와 맹사성은 자연스레 정이 들게 되었다. ‘총각 덕분에 내가 살아났지. 그렇지 않으면 죽었을 거야.’ 처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하루는 처녀가 보따리를 풀어 간직하고 있던 패물을 내놓고는 “이걸 시장에 나가 팔아 가지고 오시오”라고 맹사성에게 말하였다. 맹사성은 처녀가 시키는 대로 패물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좌판을 깔고 앉았는데,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해질 무렵이 다 되어 처녀 하나가 패물 구경을 하였다. 처녀는 패물을 보더니만 이리 들어 보고 저리 들어 보고 자꾸만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사지는 않고 그냥 가 버렸다.

그 처녀는 바로 재상집 여종이었다. 장 보러 나왔다가 자기가 모시던 아가씨의 패물을 보게 된 것이었다. 여종은 그 길로 집에 가서 재상에게 이야기하였다. “쇤네가 시장에 나갔다가 오늘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무슨 물건을 보았기에 이를 호들갑이냐?” 재상이 이렇게 물으니 여종이 대답하였다. “예전에 아씨가 가지고 있던 패물을 내가 봤나이다.” 재상은 깜짝 놀라 “그래, 패물을 팔던 총각을 네가 아느냐?” 하고 물었다. “예, 아옵니다.” 아직도 시장에 있느냐는 재상의 질문에 여종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 시각 맹사성은 여전히 패물을 팔지 못한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맹사성을 잡고서는 마구 패는 것이었다. “이놈, 누가 묘를 뒤집어 팠느냐? 아주 고얀 놈 같으니. 어째 남의 묘를 파서 물건을 팔아먹느냐?” 사람들은 맹사성을 재상집으로 끌고 가 다시 흠씬 패 주었다. “네 이놈. 패물을 어디서 구했느냐? 이실직고 안 하면 너를 죽일 테니 바른 대로 말하렷다.”

몰매를 흠씬 맞은 맹사성은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상집 안부인은 총각이 딸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부인은 “총각이 묘를 파서 우리 아이를 살렸지만 몸은 다 버려 놨으니, 장차 내 딸은 다른 데로 시집을 갈 수가 없네. 그러니 내 사위가 되어 함께 살도록 하세”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맹사성은 재상집 사위가 되었다.

재상에게는 아들 삼 형제가 있었는데, 밑도 끝도 없이 맹사성을 매부로 섬기라 하니 성도 나고 아니꼬운 마음이 가득하였다. 삼 형제는 “이놈을 망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서울 삼청동에는 아주 커다란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은 들어가 사는 사람 족족 모두 망해 나오는 집이었다. 삼 형제는 삼청동 집을 몇 푼 주고 사서는 맹사성에게 들어가 살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망해 나오는 집에서 맹사성은 아무런 재앙 없이 잘살았다. 어느 날 처녀는 “당신도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글을 배우며 공부를 하세요”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처녀에게서 글을 배운 맹사성은 훗날 개국공신이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봉사 점장이 덕에 개국공신된 맹사성」의 주요 모티프는 ‘점장이의 도움’과 ‘맹사성의 출세’이다. 맹사성이 봉사 점장이의 도움으로 위대한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로, 문맹이었던 맹사성이 대갓집 규수를 살려 주게 되면서 글도 배우고 마침내 개국공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도움을 얻어 큰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는 인물 전설의 유형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안동 지역에서 맹사성은 맹부사와 개목사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맹사성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는데, 「눈병없앤 개목사」·「물맛 좋은 영천과 명사를 춤추게 만든 두무령」 등이 그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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