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988
한자 儒敎
영어의미역 Confucianism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집필자 안병걸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개설]

유교는 공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수천 년 동안 중국·한국·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한국 유교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은 조선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크게 발전하면서 많은 사상적 유파를 형성하였으며 특히 경상북도 안동 지역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유교문화의 본고장으로 현재까지도 전통 유교문화의 지속적인 전승과 함께 많은 관련 유물·유적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유교를 조선시대 주요 유교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향교]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향교로는 안동향교예안향교가 있다. 이중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1211번지에 있는 안동향교는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인 1567년(명종 22)에 지금의 안동시 명륜동에 중건(重建)되었다. 규모가 성균관(成均館)과 동일하여 영남 지방에서 가장 컸으나, 6·25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한다. 1983년 향교복설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현 위치에 터를 잡고,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를 참고로 하여 1986년 다시 중건되었다. 대문 좌우에 있던 안동 석사자상은 현재 안동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예안향교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04-1번지[퇴계로 2020-13]에 있으며 1973년 8월 31일 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군마다 하나의 향교를 두었는데, 예안향교는 예안군에 설치하였던 향교로 1415년(태종 15)에 지었다. 현재 교육 공간인 명륜당·동재·서재, 제사 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내삼문, 이외에도 여러 부속건물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노비·토지·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 있다.

[서원]

유교문화의 본고장답게 안동은 서원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서원이 가장 많았을 때는 62개소에 이르렀고 현재까지도 모두 26개의 서원이 남아 있으며 이중 대표적인 서원은 역동서원(易東書院),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이다.

1. 역동서원

역동서원은 안동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서원으로 현재 안동시 송천동 388-2번지 국립 안동대학교 안에 있으며 2003년 9월 22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었다. 1570년(선조 3)에 창건되었으며 우탁(禹倬)의 위패를 모셨다. 1684년(숙종 10)에 사액을 받았으며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9년에 복원되었다.

2. 도산서원

도산서원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번지[도산서원길 154]에 있으며 1969년 5월 28일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과 도산서당의 설립을 통해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력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 이황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1575년(선조 8)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 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3. 병산서원

병산서원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에 있으며 1978년 3월 31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류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 제작을 비롯하여 군비 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류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류성룡이 1572년(선조 5)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1614년(광해군 6)에 존덕사를 세워 류성룡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류성룡의 셋째 아들 류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1863년(철종 14)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 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