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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735
한자 李用鎬
영어음역 Yi Yongho
이칭/별칭 국빈(國賓),성헌(省軒)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64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64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74년연표보기
몰년 1951년연표보기
본관 진성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용호(李用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국빈(國賓)이며, 호는 성헌(省軒)이다. 1874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9년 3월 17일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와 3월 18일 도산면에서 벌어진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 등이 주최가 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대대적인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자, 이용호는 이날 오후 4시경 시위 대열에 참여하였다. 예안장터에서 벌어진 시위를 마치고 귀가한 이용호는 이날 오후 6시경, 자신의 집을 방문한 도산공립보통학교 3학년생인 이호기(李鎬基)에게 예안면 시위에서 예안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크게 활약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이튿날인 3월 18일에 교정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8일 오전 11시경 이용호이극호(李極鎬) 등 수십 명의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토계리 앞개울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시위를 펼쳐나갔고, 이를 신호로 도산공립보통학교 30여 명의 학생들도 이호기의 주동으로 교정에서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에 합류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용호는 1919년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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