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72
한자 柳時昇
영어음역 Ryu Siseung
이칭/별칭 유시승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23년연표보기
몰년 1989년연표보기
본관 풍산
대표경력 안동농림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여 1989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류시승은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학생들이 주축이 된 학생 항일운동에 교사로서 참여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적으로 학도병에 끌려가기도 하였다. 즉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안동농림학교 학생인 권영동(權寧東)·고제하(高濟夏) 등은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고 있어 일제의 패전이 확실하므로,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기보다는 차라리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자고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4년 10월 말 이들은 조선회복연구단(朝鮮恢復硏究團)을 조직하였다. 한편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던 이정선(李貞善)은 1943년 귀국하여 안동농림학교 9회생 동기들을 규합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4월 면학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명성회(明星會)를 조직하고, 『여명(黎明)』이라는 교양 잡지를 발간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는 보다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1944년 10월 연합하였다. 이 두 단체는 ‘안동경찰서를 기습 공격하고 무기고에서 무기를 확보하여 항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일제에게 조직이 드러나는 바람에 1945년 단원 64명이 체포되었다. 류시승도 이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1945년 8월 17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광복 후 류시승안동농림고등학교·예천농림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2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