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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57
한자 安東農林學校學生抗日運動
영어의미역 Anti-Japanese Movement of Andong Nongnim Schoo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학생항일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43년 2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45년 8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안동농림학교
관련인물/단체 조선회복연구단|명성회|강일원|고제하|권영동|권오직|권중석|권태염|김건우|김복한|김상우|김호익|김홍구|서정인|손성한|유시승|이대녕|장병하|정현모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운동.

[역사적 배경]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학교가 점차 군사교육기관으로 변하였다. 학생들에게 소년비행대·전차대 지원을 강요하고, 군사 훈련과 도강(渡江)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또 학생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지원하기 위한 근로봉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일제는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의 패망을 감지하면서 독립군적 성격을 가진 비밀결사체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안동농림학교 학생결사단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목적]

구국의 일념으로 일본인 기관을 파괴하고 적의 후방을 교란하여 일본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연합군을 유리하게 하여 조국의 조속한 독립 회복을 기함에 있었다.

[발단]

1933년 4월 개교한 안동농림학교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군사교육기관으로 변질되었다. 만주군 출신의 일본군이 학교에 배치되어 군사 교육과 근로를 강행해 나갔다. 특히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고 나섰다. 1943년 2월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대구80연대로 끌려가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동농림학교의 일부 학생들은 손명술(孫明述)의 집에 모여 임시정부에서 보내는 방송을 듣고 있었다. 방송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 권영동·고제하·서정인 등은 일본의 군대로 끌려가 죽기보다는 차라리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자고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다 비밀결사단체인 조선회복연구단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경과]

안동농림학교 8·9회생이던 권영동·황병기·이준택·이갑룡·김오섭·장인덕·김우현·이승태 등은 1943년 10월 조선회복연구단을 결성하였다. 이 비밀결사에는 안동농림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안동 지역의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하였는데 1944년 방학 무렵에는 단원이 51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조선회복연구단이 결성되기 이전에 안동농림학교 학생들과 관계된 또 하나의 조직이 있었다. 이 조직은 명성회(明星會, 또는 여명회)로, 1942년 2월경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던 이정선(李貞善)이 일본 도쿄로 유학 갔다가 1943년 4월 하순 귀국하여 당시 친분이 있던 안동농림학교 9회생 동기들을 규합하여 만든 비밀결사단체이다.

문예서클의 성격을 띤 명성회는 면학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여명(黎明)』이라는 교양잡지를 발간하고, 역사서·사상서 등을 탐독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명성회는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하고자 1944년 10월 조선회복연구단과 연대를 모색하였다. 이 두 단체의 연합은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안동경찰서를 기습 공격하고 무기고에서 무기를 확보하여 항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안동농림학교 무기고에 있는 총으로 안동경찰서와 안동헌병대를 기습·점령하여 일본인을 제압하고, 나아가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한 뒤 의성(義城) 지역으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1945년 2월 초 일본 경찰이 이 계획을 알아내고, 관련자를 검거하기 시작했다.

[결과]

1945년 3월 10일 대대적인 검거로 인해 대부분의 회원들이 체포되었다. 안동농림학교 항일결사로 인해 체포된 64명은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을 받아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손성한은 순국하였다. 안동 출신의 강일원·고제하·권영동·권오직·권중석·권태염·김건우·김복한·김상우·김호익·김홍구·서정인·손성한·유시승·이대녕·장병하·정현모는 옥고를 치르다 광복과 더불어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의의와 평가]

안동농림학교 항일투쟁은 1894년 갑오의병을 시작으로 51년 동안 줄기차게 전개된 안동독립운동사의 대미를 장식한 것으로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학생항일운동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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