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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22
한자 閔泰圭
영어음역 Min Taegy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2년연표보기
몰년 1968년연표보기
본관 여흥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민태규는 본관이 여흥(驪興)으로 1882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6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활동사항]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민태규는 3월 17일 예안면 1차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예안면 1차 만세 시위는 이광호(李洸鎬)·이동봉(李東鳳) 등이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뒤쪽 선성산(宣城山)에 올라가 일제가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記念碑)’를 쓰러뜨리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예안면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 만세를 불렀고, 약 600명은 산을 타고 안동 시내로 들어가 3월 18일 안동면 2차 시위에 합세하였다. 민태규는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4월 17일과 5월 9일 각각 대구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민** 상기 고인은 이원영애국지사와 상당한 친분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에 대한 기록이 없어 아쉽습니다. 20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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