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81
한자 金元植
영어음역 Gim Wonsik
이칭/별칭 김소창(金笑蒼),계서(繼西)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8년연표보기
몰년 1940년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경력 혁신의회 중앙집행위원장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이명은 김소창(金笑蒼), 자는 계서(繼西)이다. 188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김원식(金元植)은 1919년과 1920년 대구를 중심으로 폭탄 구입과 임시정부 자금 지원에 참여하였다가 만주 펑톈성[奉天省]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안동 출신 인물들이 집결해 있던 서로군정서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과 동포 지원 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만주 지역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1년에는 서로군정서 독판(督辦) 이상룡(李相龍)의 지령을 받고 귀국한 뒤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1922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파견원으로 북경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24년 11월에는 정의부(正義府) 설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1924년 11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 결성에 주역으로 참여하여 1926년 11월 26일 중앙집행위원회 간부로 선출되었으며,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남만도 선전부 간부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28년 7월에는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상해지부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1927~1928년에는 만주 지역 3대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를 통합하는 3부 통합회의에 정의부 대표로 참석하였다.

1932년 4월, 김원식은 상해에 잠입하여 김원봉·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만주사변에 대항한 중한항일의용군을 결성하였으며, 1933년 동녕현 전투 이후 이청천(李靑天)과 함께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다. 이후 김원식은 신한독립당 결성에 주역으로 참여하였으며, 이어서 1935년 남경에서 민족 협동 전선체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을 창당하여 새로운 정세에 대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민족혁명당에 들어갔던 이청천과 조소앙(趙素昻) 세력이 곧 이탈하여 김구(金九)와 연합하자, 임시정부 주변에는 두 개의 거대한 연합체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1930년대 중후반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중국 본토 지역의 동향이었다. 김원식은 이 과정에서 이청천과 같은 길을 걸었다. 새로운 정세에 대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동북군사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된 김원식은 간도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 후 지린성[吉林省]에서 1940년 1월 10일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