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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66
한자 金世東
영어음역 Gim Sed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70년연표보기
몰년 1942년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70년(고종 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출생하여 1942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김세동은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고 있을 때인 음력 2월 14일 안동에서 정관식(鄭寬植)으로부터 “강화회의(講和會議)가 열리고 있는 파리로 가서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있으므로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았다. 김세동은 정관식의 주장에 찬성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김세동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19년 3월 15일 안동군 서후면의 부호인 김봉경(金鳳慶)에게로 가서 4,000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여 1,000원을 받아냈다. 이 일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된 김세동은 1919년 7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경성복심법원을 거쳐 1919년 12월 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월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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