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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20
한자 權五尙
영어음역 Gwon Osang
이칭/별칭 권오돈,전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00년연표보기
몰년 1928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전현(田賢), 또 다른 이름은 권오돈(權五敦)이다. 1900년(고종 38)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대한광복회 고문으로 활동한 권준희(權準羲)의 손자이며, 6·10만세 운동을 기획한 권오설의 사촌 아우이다. 묘는 안동시 풍산읍 수리 조부 권준희의 묘 아래 있다.

[활동사항]

권오상은 1921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중이던 1924년 화요계 청년운동 단체인 신흥청년회(新興靑年會)에 가입하여 사회주의를 접하게 되었다. 이듬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고, 고려공산청년회 및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또한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4월 25일 조선학생과학연구회가 6·10만세 운동을 추진하자 권오상은 고려공산청년회와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을 포섭하는 등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거사 직전인 6월 7일 계획이 탄로나 권오설 등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말았다.

다행히 권오상이 이끄는 학생 조직의 계획은 발각되지 않아 계획대로 만세 운동을 추진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국장일(國葬日)에 권오상은 연희전문학교 학생들과 함께 격문을 살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권오상은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1928년 2월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복역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28년 5월 보석으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동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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