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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15
한자 成文夏
영어음역 Seong Munha
이칭/별칭 국화(國華),오음(梧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영주시 백암면
성별
생년 1638년(인조 16)연표보기
몰년 1726년(영조 2)연표보기
본관 창녕
대표관직 영릉참봉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국화(國華), 호는 오음(梧陰). 할아버지는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 아버지는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망월헌(望月軒) 금개(琴愷)의 딸, 처는 여주이씨(驪州李氏)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5세손으로 직장 이돈(李墩)의 딸이다. 여주이씨와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활동사항]

성문하는 할아버지 성안의가 창녕으로부터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 백암면으로 이거한 후에 태어났다. 부모를 모두 여의자 외삼촌 낙포(洛浦) 금성휘(琴聖徽)를 따라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 우거하기도 하였다. 1673년(현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1등이 아니라서 좋아하지도 않았다.

예안에 있으면서 이곳의 숙로(宿老)들과 도의(道義)로써 절차탁마하며, 경사(經史)를 두루 익혔다. 1692년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시대가 옳지 않음을 알아 몇 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89세의 수를 누렸기 때문에 둘째 형과 더불어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성문하는 영리(榮利)를 멀리하면서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여 청백(淸白)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오음집(梧陰集)』이 있다.

[묘소]

아내인 여주이씨보다 하루 먼저 세상을 떠나 여주이씨와 함께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할머니 정부인(貞夫人) 김씨(金氏)의 무덤 밑에 묻혔다. 눌은 이광정이 묘갈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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