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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구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107
한자 綾城具氏
영어의미역 Neungseong Gu Clan
이칭/별칭 능주구씨(綾州具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집필자 김복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안동시 와룡면 지내리 지도보기
입향시기/연도 15세기 말
성씨시조 구존유(具存裕)
입향시조 구익명(具益命)

[정의]

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익명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능성구씨는 고려 때 삼한삼중대광검교대장군(三韓三重大匡檢校大將軍)을 지낸 능성구씨의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7세손 송은(松隱) 구홍(具鴻)을 파조로 하는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의 후손 구익명(具益命)이 안동으로 이거해오면서 시작된 세거 성씨이다.

[연원]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는 고려 말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을 지낸 구존유(具存裕)로 신안주씨(新安朱氏) 주잠(朱潛)의 사위이다. 주잠이 1224년(고종 11) 송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을 때 몽골의 침입을 피하여 고려로 망명하여 능성(綾城)[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은거하였다. 구존유는 은거하던 주잠의 딸과 혼인하여 능성에 세거하게 되었고, 그 뒤 구존유의 후손들이 능성을 구씨의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한다.

구존유를 비롯하여 그 후손이 대대로 고려 조정에 진출하여 명성을 높였다. 7세손 구홍우왕 때 밀직부사를 지냈으나 조선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1403년(태종 3년) 좌정승에 추서되고 시호 문절(文節)이 내려졌다. 구홍의 묘소와 사우는 개성에 있고 맏아들 구종지(具宗之)의 후손들도 개성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안동 지방에 정착한 능성구씨구홍의 넷째 아들 구종수(具宗秀)의 후손들이다.

[입향경위]

구홍의 넷째 아들 구종수는 합천인 이중경의 사위이다. 이중경은 세종 7년에 안동부사(安東府使)를 역임하였고 이중경의 손자 쌍봉(雙峰) 이복로(李福老, 1469~1533)는 영양인 남팔준의 사위가 되어 안동 일직에 정착하였다. 구종수의 아들 구익명(이중경의 외손자)이 청주인 정약(鄭若, 형조좌랑)의 사위가 되어 면천(당진군)에서 안동으로 이거하여 와룡면 지내리에 정착하게 된다.

구익명은 아들 넷을 두었는데 맏아들 구인충(具仁忠)은 후사가 없고 셋째 아들 구인신(具仁信)과 넷째 아들 구인정(具仁貞)의 후손들은 각 각 용궁과 영양에 거주하고, 안동에는 둘째 아들 구인서(具仁恕)가 권자경의 사위가 되어 그 후손들이 계속 거주한다. 구인서의 증손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1526~1586)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60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지냈고 시호가 문단(文端)이다.

[현황]

현재 와룡면 지내리 모사골에 있는 백담의 옛 기지에는 사당만 남아 있고 구봉령을 제향했던 주계서원(周溪書院) 역시 대원군 때 훼철된 후 주춧돌만 남게 되었으며, 현재 구봉령의 후손으로 안동 지방에 살고 있는 가구 수는 매우 적다.

[관련유적]

백담 구봉령의 묘소가 안동댐 주진교 약 500미터 전방 도로 왼편에 있고, 와룡면 지내리 모사골에 구봉령의 사당과 구택 호도정이 있으나 호도정은 타성의 소유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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