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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03
한자 安奇道
영어음역 Angido
영어의미역 Angido Road System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명자(역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 전기
시행연도/일시 고려 전기
폐지연도/일시 1884년연표보기
시행처 안동부

[정의]

고려와 조선시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역 관리 체계.

[개설]

역은 중앙과 지방간에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진상(進上)·공부(貢賦) 등의 공공 물자를 운송하며,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 지대(支待)와 숙박 편의를 제공하고 통행인을 검문, 규찰하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역은 통신·숙박 기능 및 역마 제공, 운송의 기능과 지역 방어를 수행함으로써 중앙집권적 통치기구를 유지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역은 교통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시 되었다. 조선의 역제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 경국대전 체제로 확립됨으로써 조선적인 역로 조직이 마련되었으며, 조선 후기까지 커다란 변동이 없이 대부분 유지 존속되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중앙집권적 통치기구를 유지하는 데 교통과 통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이러한 체계를 정립하였다.

[내용]

안기도 소속의 안동의 역으로는 안기역, 금소역, 송제역, 운산역 등이 있다. 안기역(安奇驛)은 찰방역(察訪驛)이며, 안동부(安東府)의 북쪽 3리에 있다. 철파(鐵破: 의성)·금소(琴召: 안동)·송제(松蹄: 안동)·청운(靑雲: 청송)·문거(文居: 청송)·화목(和睦: 청송)·각산(角山: 진보)·영양(寧陽: 영해)·청로(靑路: 의성)·운산(雲山: 안동) 등 10개소의 역을 관할하였다.

이 역은 동으로 금소역, 서로 안교역, 남으로 운산역, 북으로 옹천역과 각 30리 내외의 간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이 역은 대마 2필, 중마 2필, 복마 10필을 구비하고 있었으며, 찰방 18명, 역리 1019명과 노(奴)는 196명, 비(婢)는 111명이 있다. 금소역안동부의 동쪽 30리(지금 임하면 금소동) 임하현 서쪽의 금소천 북안에 있다. 동남으로 송제역이 40리, 동으로 청송 청운역이 60리에 있다. 이 역에는 대마 1필, 중마 1필, 복마 8필을 갖추고 있고, 역리 285명과 노(奴)는 66명, 비(婢)는 34명이 예속되어 있었다.

송제역은 안동부에서 동쪽으로 76리, 길안현에 있었다. 동남으로 청송 문거역이 30리, 남으로 청송 화목역이 30리에 있다. 여기에는 대마는 없고 중마 2필과 복마 8필만 있었으며, 역리 42명, 노 14명, 비 5명이 예속되어 있었다.

운산역안동부에서 남쪽으로 33리, 일직현에 있었다. 동남으로 의성 철파역이 30리, 남으로 비안 쌍계역이 50리에 있다. 여기에는 대마 1필, 중마 2필, 복마 9필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역리 7명, 노(奴) 79명, 비(婢) 26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한편, 당시 운산역에 관한 김종직(金宗直)의 시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운산역 둘레에 석양이 물드는데

시냇가의 그윽한 꽃은 말 주위에 향기를 피우네

들꿩은 사랑스런 마음으로 스스로 답하려 하니

수풀 건너로 멀리 애여장(艾如張)이 보이네

(雲山驛畔欲彩陽 澗底幽花擁爲香 野稚挾春謀自應 隔林遙見艾如張)”

[변천]

조선시대의 역로는 역도(驛道)-속역(屬驛) 체계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역도는 도로의 상태와 중요도 및 산천의 거리에 따라 여러 개의 역을 묶어 역승(驛丞)이나 찰방(察訪)의 지휘 감독 아래 순행, 고찰하면서 역을 관리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 역도는 고려 초기의 6과 체제가 22역도 체제로 편제되면서 성립되었다.

조선은 고려의 이러한 역도-속역 체계를 계승하면서 점차 역의 신설과 역도를 개편하여 역에 대한 국가의 관리를 강화하였다. 1413년(태종 13) 9월에 서북면의 생양관(生陽館)에서 의순관(義順館)까지 역승을 임명하고, 또 금교참(金郊站)에서 경천참(敬天站)까지는 관승(館丞)을 임명하여 그들의 관리 아래 역을 관장하도록 하였으며 이와 함께 역도도 개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413년 10월에는 경기도의 일부 역도를 개편하였는데 마산도(馬山道)를 청파도(靑坡道), 금곡도(金谷道)를 중림도(重林道), 풍해도칠참(豊海道七站)을 동선보산도(洞仙寶山道)라 개편하고 동시에 청교도(靑郊道)를 하나 더 증설하였다. 1414년(태종 14)에는 평구도(平丘道)를 복치하고 15년 4월 풍해도구참(豊海道九站)에 관승 1인을 더 두어 금교경천도관승(金郊敬天道館丞)이라 하였다. 1417년 10월에는 관승을 혁파하고 찰방 체제로 바꾸었다.

1432년(세종 5) 7월에는 경상도의 황산도(黃山道)·성현도(省峴道)를 설치하고 역승을 파견하였으며 태조 이후 세종 때에 걸쳐 동북 지방의 개척에 따라 새로운 역을 설치하여 함길도의 역로 조직도 새롭게 편성되었다. 함길도에는 고산도(高山道)·시리도(施利道)·주천도(酒泉道)라는 3개의 역도가 편성되었다. 세종 때에는 함길도뿐만 아니라 경기 및 경상도 지방의 역도 체제를 정비하여 거의 전국적 규모의 역로를 조직하였다.

이 때 경상도 안기도(安奇道)에는 역승이 18명이 있고, 속역은 안동에 안기·옹천·일직신역, 임하에 금소·송제, 의흥에 우곡, 의성에 청로·철파, 영해에 예곡·석보신역, 영덕에 남역·주등, 예안에 예안신역·용안, 청송에 문거·화목, 진보에 진보신역, 청송에 신안이 있다.

세종 때의 역도 체계는 세조 때에 대폭적인 개편을 하게 된다. 완성된 조선의 역은 대·중·소로로 나누고 각 역에는 공해(公廨), 즉 역사(驛舍)를 축조하여 각 역민(驛民)의 역할에 따른 역의 업무를 집행하였다. 이 때 경상좌도의 안기도는 속역이 10개로 통합되었다. 의성에 청로·철파, 안동에 운산(雲山)·금소·송제, 청송에 청운(靑雲)·문거·화목, 진보에 각산(角山), 영해에 영양(寧陽)이다. 그 후 조선 후기에는 안기도의 속역이 12개로 정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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