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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천마을의 학자이자 장로인 강신중 어른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D030201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정현

옹천마을에는 아직도 문서가 이어지고 있다. 학식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옹천마을에서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강신중 옹을 찾으면 집을 알려준다. ‘우리 마을 박사님’이라며 자랑하기 바쁘다.

강신중 옹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만학에 성공한 어른이자 다양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학자이다. 또한 1907년에 설립된 옹천교회의 장로이기도 한다.

강신중 옹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다.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하고 일을 해야 했으나, 어찌어찌 검정고시를 치고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여 마침내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선생님의 꿈을 이룬 것이다. 강신중 옹은 선생님이 되어 북후중학교와 언양초등학교, 안동동부초등학교, 감천초등학교, 북후초등학교 등에서 근무하였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2003년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교장으로 퇴임 후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문중 일이었다. 열녀각에 비를 새겨서 설치했고, 부지옹 강주우 선생의 문집인 『옥천연방고』를 한문·국문 병기로 간행하였다.

문중을 위해 일하면서도 그리스도교에 헌신하기도 했다. 그가 장로로 일하고 있는 옹천교회는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옹천마을에 우뚝 서 있다.

옹천교회의 역사는 1907년 7월 영천군 천상면 서당리 지신(현 영주군 평은면 지곡리)에 설립되었던 장로교회인 지곡교회와 역사를 같이 한다. 당시 서당리에 교회가 세워지자 이듬해인 1908년부터 옹천리에 사는 강후진, 강성도, 강대흥, 강노수, 강율원 씨 외 10여 명이 지곡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신자를 많이 얻었다. 그런데 서당리 교회까지 왔다 갔다 하기에는 불편함 감이 없지 않아, 옹천에 교회를 설립해야겠다고 뜻을 모으고는, 김신애 여전도사를 모시고 옹천리에 기도소를 정하고 예배하면서 수년간 기도에만 치중하였다.

또한 대구에 있는 신명여학교 전도대를 청하여 수년간 강연회를 개최하고, 김영국 목사와 김병우 장로를 모시고 3일간 집회를 열어서 동민들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실로 교인이 50여 명에 달하게 되어 옹천동 591-14번지에 있던 강증태 씨의 가옥을 매입하여 성탄절을 기하여 설립 예배를 보게 되었다.

강신중 옹은 칠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열적으로 마을일을 돌보고, 교회일에도 열심이며. 옹천과 강씨 문중에 대해 물어 보는 이가 있으면 두 팔 걷고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안내한다. 한편으론 늘 학문을 벗 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서재에는 한학과 국학 관련 책자들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의 노력이 보다 빛을 발해 옹천마을의 활성화와 대동마을을 만들어가는 데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

[정보제공]

  • •  강신중(남, 1938년생, 옹천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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