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사익재서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D010302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593-3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정현

옹천마을 서당골에 위치한 사익재(四益劑)는 옹천장터에서 학가산 방향으로 진행하다 동네가 끝나는 지점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서당 앞으로는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는 멀리 줄지어선 산들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산자락 끝을 정지한 곳에 남동향으로 앉아 있다.

강신중 옹이 사익재에 있는 「서당기(書堂記)」에 쓰여 있는 내용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요기 인제 「서당기」(서당에 관한 내력을 기록해 놓은 문서)를 해 놨는데, 본여어는요(보며는요), 왜 이게 옥천이라고 그랬노 그러문, 이 옥천이 말이래. 이 물이 본새 원류가 저 옥산(玉山)서 내려 와요. 옥산서 내려와 가주 이 폭포가 생기는 게 물이 탁 박아가 주고 흩어지는 모양이 똑~옥 흩어지는 모양 긑에. 지금도 가면 여기 흩어지지, 왜요, 여기. 그래 가주 그래 인제, 이 옥계서당이라꼬도 하잖니껴?(옥계천이라는 개울은 아직도 사익재 앞을 지나 흐르고 있다. 그래서 사익재도 옥계서당(玉溪書堂)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익재라고도 글치만 옥계서당이라고도 하고, 인제 옥천이라고 카는 거는 이 아매 여기 인제 구슬 같은 거 흩어지는, 물 흩어지는 그 모양 가주고 따가주 옥천이라 그랬으께래.”

사익재는 부지옹(不知翁) 강주우(姜周祐, 1757~1816)의 문인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섬학계(贍學契)를 만들고, 1799년에 42냥으로 여섯 칸 기와집을 매입하여 서당으로 사용한 것으로, 이 건물의 창건 연대는 1799년 이전으로 여겨진다.

사익재는 창건 당시의 모습을 거의 잃은데다 구조 양식적으로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지만 창건 시기까지 올려 볼 수 있는 청방간의 개구부 형식이 남아 있는 건물로 건축 사료적 가치가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한의사 강형수(姜馨秀)가 용전학술강습회를 설립하여 신교육의 장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1927년에 강형수가 사익재 위쪽에 정자인 쌍암정(雙巖亭)을 지은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사익재는 2009년 1월 21일 안동시 문화유산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안동시는 사익재와 같이 보존가치는 높으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어 점차 훼손되어 가던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소유자들의 보존·관리 의지를 일깨워주는 계기를 만들어 전통문화유산 보호의식을 함양하고, 이 문화유산들이 안동시의 문화자산 및 교육자료,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사익재가 그동안 비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부분을 극복하고 옹천마을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우뚝 설 것을 기대해 본다.

[정보제공]

  • •  강신중(남, 1938년생, 옹천리 거주)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