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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D010104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정현

진주강씨의 옹천 입향은 1500년경(홍치말) 강두전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실상은 진주강씨만 들어온 것은 아니고, 밀양박씨와 진성이씨, 안동김씨 등이 함께 들어와서 살았는데, 정확하게 어떤 성씨가 먼저 들어오고 나중에 들어왔는지 선후는 확실하지 않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성씨들은 대부분 큰 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으나 진주강씨들은 후손을 많이 퍼뜨리면서 옹천의 세거성씨가 되었다는 점이다. 워낙 진주강씨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옹천강씨라는 별칭이 만들어질 정도로, 안동 인근에서 옹천 하면 강씨들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란다.

2009년 1월 23일 현재 옹천리에 거주하는 주민은 옹천1리 119세대, 옹천2리 100세대, 옹천3리 217세대 등 총 436세대에 989명이다. 이 중 약 200여 가구 정도가 옹천강씨라고 한다. 옹천리북후면의 면소재지여서 외지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다.

그런데도 옹천강씨가 반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옹천리에 대한 옹천강씨들의 애착은 강하다고 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간 여타 농촌 마을과 달리 옹천에서는 30~40대 젊은 농부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옹천리에는 젋은 인력들이 외지로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면사무소와 옹천역, 농업협동조합, 농업기술센터, 파출소, 보건소, 우체국, 북후중학교, 북후초등학교 등 관공서와 공공기관이 자리하고 있어서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옹천 인근에서 옹천강씨 하면 결속력이 뛰어나고 의지가 강한 문중으로 인식되고 있다. 본래 장기리 쪽에 있던 시장을 옹천으로 끌어온 것이나, 면소재지와 역 등을 옹천으로 유치한 것도 옹천강씨들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였다고 한다.

또한 동채싸움이나 줄당기기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승벽도 강했다고 한다. 안동과 영주의 경계지대에 있으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여느 지역 못지않게 독립운동자금을 흔쾌히 낼 정도로 옹천리진주강씨들은 민족정신이 투철했다. 옹천 출신의 강형수 등이 만주 무장투쟁운동에 적극 가담한 것도 민족정신이 투철한 고향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리라.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옹천강씨들이 앞으로 옹천리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자못 궁금해졌다.

[정보제공]

  • •  강신중(남, 1938년생, 옹천리 거주)
  • •  강삼룡(남, 1944년생, 옹천리 거주)
[참고문헌]
  • 「내부자료」, 북후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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