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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20204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재해

풍산류씨 하회 종가에는 한 집에서 세 명의 불천위가 탄생했다. 입암공 류중영(柳仲郢)문경공 류운룡(柳雲龍), 문충공 류성룡(柳成龍)이 그 주인공들이다. 불천위 제사란 일반적으로 4대조까지만 올리는 제사의 관례를 깨고 5대조, 6대조가 되어도 그 후손들이 끊임없이 계속 제사를 올리는 특별한 제사를 말한다.

이것을 불천위라고 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사당에 위패를 차례로 모시는데, 오른쪽에서부터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아들이 죽고 손자가 제사를 올리게 되면 죽은 아들의 위패가 부모 자리에 가고 부모의 위패는 조부모의 자리로 계속해서 왼쪽으로 옮겨 가다가, 아들의 고조부모는 손자 대에 이르면 위패를 더 이상 옮겨 앉힐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위패가 계속 옮겨가다가 5대조에 이르면 제사가 끝나는 것이 관례인데, 불천위를 받게 되면 위패를 옮기지 않고 제일 왼쪽 자리에 고정하여 두고서 대대로 계속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양진당 의 사랑채 오른쪽 뒤꼍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사당이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제법 나이든 나무들이 담장 안팎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사랑채와 달리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큰 사당에는 현재 양진당 종손의 4대조에 이르는 신주들과 입암공의 불천위를 모셔 두었다. 작은 사당은 별묘(別廟)로서 정면 2칸, 측면 1칸인데 겸암의 불천위를 별도로 모셔 두었다. 입암공 부자가 모두 불천위이므로 한 사당에 두 불천위를 모실 수 없어서 별묘로 작은 사당을 새로 짓고 겸암의 불천위를 따로 모신 것이다. 한 집에서 사당이 둘인 곳은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양진당의 두 사당은 주목을 끌 만하다.

양진당 종손의 말에 의하면, 지금은 사당이 두 개지만 1800년대에는 네 개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입암공문경공의 불천위를 모신 사당이 따로 두 개가 있었고 4대봉사 신위를 모신 사당이 하나, 주손의 5대조 또는 6대조 신위를 모신 별묘사당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보통 5대조와 6대조는 길제(吉祭) 또는 매혼(埋魂) 제사라 하여 마지막으로 큰 제사를 올리고 위패를 산에 가서 묻는 게 관례지만 5대조 또는 6대조의 자손이 살아 있을 때에는 별묘를 두어 위패를 모셨다. 종합해 본다면 1800년대 양진당에는 모두 4채의 사당이 있었으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입암공의 불천위와 4대조 위패를 모신 대묘와 문경공의 불천위를 모신 별묘 등 두 채의 사당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

  • •  류상붕(남, 1952년, 하회리 양진당 거주, 풍산류씨 종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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