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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각에 전시된 서애 선생의 저술과 유물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20103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재해

하회에는 각종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유교적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유적들은 하회의 집과 서원, 정자 등이 중심을 이루며 유물들은 주로 서애 류성룡이 남긴 것으로 현재 영모각(永慕閣)에 전시되어 있다.

영모각은 1965년 9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6월에 준공한 서애의 유물 전시관으로, 유물을 모두 보존 전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서 1975년에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른다.

영모각에는 많은 옛 문헌과 고문서 및 각종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류씨 집안사람들의 문집 외에 퇴계학파의 여러 문집들이 두루 갖추어져 있는데, 그 중에는 『징비록』과 함께 서애가 저작한 책들이 많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도체찰사, 비변사 등의 관직을 지내면서 왕에게 건의한 문서를 수록한 『근폭집(芹曝集)』, 임진왜란 중 도체찰사로서 현지에 머물면서 군의 동정과 전황을 보고하고 대비책을 건의하며 지휘관들에게 군병의 훈련과 요새의 수비 등을 지시한 문서들을 수록한 『진사록(辰巳錄)』과 『근문등록(軍門謄錄)』, 관직에서 물러난 뒤 난중의 모든 사적을 회상하고 기록하여 뒤에 『징비록』으로 재탄생한 『난후잡록』과 다사다난했던 생애를 회고한 형식의 『운암잡록(雲巖雜錄)』 등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 외에 서애의 저술들은 보물 제160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서애 선생의 어머니가 후손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면서 자녀 구별 없이 공평하게 분재(分財)한 것을 기록한 「서애선생모부인곤문기(西厓先生母夫人昆文記)」는 당시의 상속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유물로는 도체찰사로 군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지녔던 군사 장비들인 투구와 갑주, 장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관직과 관련된 유물로는 홀(笏)과 관자(貫子), 유서통(諭書筒), 조복(朝服) 띠 등이 있다.

서애의 일상적인 용품으로 남아 있는 유물로는 갓과 가죽신, 그리고 책상이 남아 있다. 갓은 예사 갓과 다른 옥로(玉鷺) 갓으로서 머리를 덮어쓰는 대우가 부드럽게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가죽신은 갓에 비하여 상당히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혁화(革靴)라고 하는 이 가죽신은 서애가 평소에 신던 것으로 300여 년 전의 신발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유물들은 대부분 보물 460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유물 가운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서애가 직접 사용하던 책상이다. 당시에는 흔히들 서안(書案)이라고 했는데, 서애가 독서할 때 늘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상의 뒷면에는 “임진왜란을 극복한 선생의 탁월한 경륜과 높은 학문이 모두 이 책상 위에서 나왔다.”고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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