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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10103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집필자 임재해

풍수지리에서는 얼굴이나 집터, 묏자리 따위의 겉모양과 생김새의 특징을 ‘형국(形局)’이란 말로 대치하여 많이 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회의 전체적인 모양은 연화부수형 또는 산태극수태극을 이루는 ‘태극형’의 형국을 이루고 있으며, 또는 배가 떠나는 형국이라 하여 ‘행주형(行舟形)’이라고도 말한다.

물 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상인 연화부수형을 옆에서 보면 행주형으로 보인다고 한다. 부용대 기슭에 앉아서 마을을 보게 되면, 화천에 둘러싸여서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마을의 모습이 마치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배처럼 보인다.

예부터 다리미형과 행주형 마을에는 우물을 파지 않고 돌담도 쌓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루가 달린 재래식 다리미는 넓적한 쇠판 위에 숯을 올려놓고 다림질을 한다. 그런데 이 뜨거운 다리미에 물을 부으면 다리미가 식어서 다림질을 할 수 없다. 또 물에 떠 있는 배에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는다. 또 무거운 돌을 배 가득히 실으면 배가 나아갈 수 없다. 이런 까닭에 하회에서는 함부로 우물을 파지 않고 돌담도 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이 생긴 이래 불편하더라도 화천에서 물을 길러다 먹었으며, 최근까지도 샘을 파지 않고 양수기로 화천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썼다.

춘양댁이라고도 부리는 김수갑 할머니가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회는 연화부수형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리미형이라고 하기도 하고. 옛날에 빨래 다리미 동그란 다리미에다가 숯불을 피우자나. 숯불 피우면 불은 항상 피우면 복판에 바글바글 불이 더 세자나 가에 보다. 이 마을에는 기와집은 마을 복판에 있고 뱅 돌아가면 변두리는 전부 초가집이었어. 옛날 지금은 뭐 저거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다리미형이기 때문에 복판에 사람들이 잘 산다 이거야. 다리미 형은 복판에 불이 바글바글 끊고……. (이하 중략)”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풍수지리학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 혈(穴)이 흐른다는 곳에 대못을 박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하회마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하회마을의 형국을 파괴하기 위해 마을 안에 의도적으로 우물을 팠던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마을 입구에 있던 주재소와 양진당충효당 사이에 있던 풍남면사무소, 삼신당 북쪽에 있는 보통학교 안에 각각 하나씩 우물을 파서 모두 다섯 개의 우물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마을에 우물을 판 이후 만송정숲의 소나무가 쓰러졌을 뿐 아니라, 만송정숲에 서식하던 학들이 날아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그 당시 팠던 우물이 몇 곳 남아 있으나 주민들은 그 우물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은 수도시설이 집집마다 갖추어져 있는데다 우물물이 깨끗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우물을 팠던 당시에도 우물물이 드세어 세수하는 물로는 사용할 수 없어서, 걸레를 빨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허드렛물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정보제공]

  • •  류시억(남, 하회리 거주)
  • •  조순희(여, 1929년생, 하회리 거주, 일명 상주댁)
  • •  김수갑(여, 1934년생, 하회리 거주, 일명 춘양댁)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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