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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동생을 물리친 겸암선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427
영어의미역 Master Gyeomam Who Repelled the Younger Sibling Fox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조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
주요 등장인물 겸암선생|서애대감|구미호|신을 삼는 처자
모티프 유형 겸암선생의 재기|구미호의 퇴치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겸암선생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겸암선생이라 불리는 류운룡(柳雲龍, 1539~1601)과 서애대감이라 불리는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형제로서, 류운룡류성룡의 형이다. 류운룡은 조선 선조(宣祖, 1552~1608) 때의 목사로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庵)이다. 1572년(선조 5)에 전함사별좌를 지냈다. 류성룡의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대사헌·경상도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도학·문장·덕행·서예로 이름을 떨쳤으며, 저서에 『서애집(西厓集)』·『징비록(懲毖錄)』·『신종록(愼終錄)』 등이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1년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주민 강대각(남, 62)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에 수록하였다.

[내용]

겸암선생 류운룡과 서애대감 류성룡은 형제로서, 겸암선생은 숨은 선비이고 서애대감은 영의정도 하고 병조판서도 하였으니 출장입상(出將入相)한 사람이다. 서애대감과 겸암선생은 우애가 무척 깊었다. 어느 날 서애대감의 아버지가 나이 칠십에 재혼을 하여 꽃 같이 어여쁜 젊은 부인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꽃 같은 아이를 하나 낳았다.

아이가 점점 장성하니 겸암선생과 서애대감은 “암만 배다른 동생이지만 그래도 아버지 혈육인데 우리가 동생 장가를 보내야 하지 않겠나” 하고는 서울에 있는 대갓집으로 갔다. 대갓집에서는 서애대감의 명성을 듣고는 자꾸 딸을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겸암선생은 “안 되네. 사람은 자기 배필이라야 되지. 자기 배필이 아니면 안 되네” 하며 반대하는 것이었다.

서애대감이 “가문도 좋고, 여러 가지 다 좋은데 혼인을 성사시키지요” 하면서 자꾸 권하여도 겸암선생은 “안 되네. 안 되네” 하였다. 서애대감은 아무리 형이라도 괘씸하게 여겨졌다. ‘내가 하자는데 자꾸 반대하는 게 뭐람. 나보다 나은 형도 아니지 않은가.’ 겸암선생은 앞서가고 서애대감은 계속 불평을 하면서 뒤따르는데, 마침 어느 촌을 지나다가 소나기를 만나 한 오두막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두막에 들어가 보니 웬 노인하고 처자가 앉아서, 노인은 신을 삼고 처자는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겸암선생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노인하고 주고받다가 심부름하는 처자를 동생 배필로 삼으면 어떻겠냐고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이 좋다고 하자,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애대감은 성이 났다. 신이나 삼고 있는 하잘것없는 노인하고 사돈을 맺으려고 하니 성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형이니까 말도 못하고 시름시름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일이 있고부터 형제간에 우애가 끊어지게 되었다. 서애대감은 화가 나서 겸암선생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서로 소원하게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하루는 겸암선생이 서애대감을 불렀다. “동생, 동생. 여기 좀 들어와 보지.” 서애대감이 마지못해 들어가니 “오늘이 동생 혼삿날인데 여기 있으면 제수씨하고 온다고 했으니 같이 기다려 보지” 라고 겸암선생이 말하였다.

그래서 겸암선생과 서애대감이 함께 방에 있게 되었는데, 새벽녘쯤 되니 뜰 담 아래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 보니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가, 말하자면 구미호가 쓰러져 있었다. 얼마 후 촌에서 보았던 심부름하던 처자가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이만하면 되었지요?”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여우와 처자가 연이어 나타나니 서애대감이 놀라서 “이게 무슨 일이오? 왜 그러오?” 하고 재차 물었다. 겸암선생이 말하기를 “동생.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재혼할 때 색시로 들여온 게 여우라네. 아버지가 홀려서 그렇게 된 거지. 그런데 아버지가 들인 색시가 여우라고 말릴 수는 없잖은가? 여우, 즉 구미호가 새끼를 낳았으니 그 새끼 역시 구미호가 되지. 그런데 그걸 남의 손을 빌려서 죽여야지 아버지 혈육을 우리 손으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겸암선생은 이미 그전에 신을 삼던 처자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겸암선생은 덧붙여서 “만약 그때 재상집 처자를 색시로 들였으면 여우 동생한테 우리 전부 죽음을 당하였을 것이야”라고 말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서애대감은 그때서야 깨달으며 형에게 꼼짝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여우동생을 물리친 겸암선생」의 주요 모티프는 ‘겸암선생의 재기’와 ‘구미호의 퇴치’이다. 구미호를 새어머니로 들이게 되고, 그 자손을 혼인시키고자 하는 과정에서 겸암선생과 서애대감이 대립하는 구조를 보여 준다. 결과적으로는 이인이었던 겸암선생이 모든 정황을 꿰뚫어 보고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벼슬과 명예가 높은 서애대감이지만 전해 오는 설화에서는 겸암선생을 더 높이 보는 경향이 많다. 「여우동생을 물리친 겸암선생」에서도 서애대감이 겸암선생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설정함으로써 인물에 대한 민중적 평가의 다양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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