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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가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375
한자 內房歌辭
영어의미역 Lady's Old Form of Korean Verse
이칭/별칭 규방가사,여성가사,여류가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집필자 박동철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양반가의 부녀자들이 짓고 향유한 시가와 산문의 중간 형태의 문학.

[개설]

내방가사는 주로 규방의 여성들에 의하여 창작되고 전해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규방가사(閨房歌詞)·여성가사(女性歌辭)·여류가사(女流歌辭) 등으로도 부른다. 소재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적인 것부터 남성 중심의 유교 체제하에서 여성이 겪는 비애와 노동의 고단함, 기행(紀行)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의식과 생활 체험에서 겪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되었다. 내방가사는 3·4 내지 4·4조의 2음보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두루마리나 장책(裝冊) 등의 양식으로 필사하거나 여성들의 모임에서 낭송함으로써 전승·전파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내방가사는 ‘조선 후기에 내방의 규수 작가들이 지은 가사문학’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영남 지방의 양반 부녀자들을 주된 향유층으로 하여 창작되어온 문학의 양식’이라고 정의하여 ‘영남’이라는 지역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는 여성이 가사를 짓기 시작한 전통이 영남에서 비롯되었고, 작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이 영남에서 생산되었으며, 대부분의 내방가사 문서가 영남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즉 영남 지역에서 생겨나 이곳에서 크게 성행·발전하여 전파되었기에 내방가사를 영남의 특징적 여성문학으로 보기도 한다.

내방가사는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영남 사대부의 문학 정신이 규방의 여성에게로 이어졌기 때문에 영남 지역에서 발달할 수 있었다. 내방가사는 영남 지방 중에서도 특히 안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학자들이 발굴하여 학계에 발표한 작품들의 작자나 제공자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안동문화권 출신이거나 안동과 연이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안동은 명실공히 가사문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연원과 변천]

조선시대 여성의 교육은 학문적 배움을 제한하면서 여성으로서 어떻게 조상을 모시고, 남편을 섬기며, 자녀를 잘 양육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특히 조선 중기까지 양반가의 여성은 혈통에 따라 혼인과 거주지가 철저히 제한되었으며, 생산 활동에도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여성의 교육을 위하여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내훈(內訓)』, 『언행록(言行錄)』 등의 전적이 한글 가사체로 옮겨지면서 교훈적인 내용의 가사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초기의 내방가사는 그 내용이 도덕적·경계적(警戒的)이었으며, 비록 여성이 향유했다 할지라도 작가가 남성인 경우가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사회가 급변하고 양반계층이 붕괴되면서 양반의 부녀자라 할지라도 일부는 농경 및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양반의 경제적 형편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여전히 글을 읽거나 학문하는 것을 중히 여기면서 생계는 전적으로 여성이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일변도이던 내방가사에 체험적 요소가 가미되어 그 내용이 더욱 사실적이고 풍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남존여비의 인식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여성의 노동이 증가하고 고된 삶이 지속되면서 생활에 억눌려 있던 여성의 울분과 비애, 탄식이 내방가사를 통하여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양반과 평민의 경계가 약화되고, 서로 간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내방가사의 향유층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런 까닭에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엄청난 양의 내방가사가 폭발적으로 생겨나게 된 것이다. 또한 여성의 출입이 자유로워지고 원거리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기행(紀行)의 내용을 담은 가사가 생산되었다.

두루마리에 적힌 가사는 여성 혼자 창작하거나 읽기도 하지만, 주로 여성들의 규방모임에서 낭송되거나 창작된다. 예를 들어 삼월 삼짇날 여성들의 화전놀이에서는 수십 편의 가사가 낭송되고 필사되면서 전승·전파되었다. 낭송과 필사는 내방가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작자 미상인 비슷한 내용의 내방가사 수백 편을 볼 수 있다. 작품들이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은 낭송과 필사의 과정에서 개인의 의식이나 취향에 따라 재평가되고 조절 및 재창작되었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한 명의 청자가 다수의 화자를 향하여 가사를 낭송하면 그 과정에서 청자의 개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청자는 개인의 기억이나 취향에 따라 ‘이러한 내용을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등의 의견을 서슴없이 피력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내용이 수정되는 것이다. 또한 개인이 필사할 때에도 자신의 의견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고, 이미 존재해 있는 이야기를 자신의 경우에 맞추어 재창작하기도 한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여성들이 한 집에 모여 밤새도록 가사를 낭송하며, 다른 가사를 두루마리에 필사하여 보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여성들은 필사한 가사를 시집가는 딸에게 물려주기도 하였다. 또한 친정과 시가에 왕래가 있을 때마다 가사를 베껴 오기도 하였다. 혼인을 통한 주거지의 이동은 가사를 전파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내방가사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었고 작품의 창작력 또한 약화되어 전승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내용]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내방가사는 그 내용에 따라 교훈가·구국가·자탄가·화전가·경축가·기행가·이별가·열녀가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교훈가는 내방가사 중 가장 먼저 생겨난 종류로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법도를 담고 있다. 「오륜가」·「부모은중가」·「교훈가」·「계녀가」·「자녀훈계가」 등이 있다. 구국가는 나라에 대한 사랑이나 충절을 노래한 것으로 「단종애사가」·「대한해방가」·「구국명륜가」 등이 있다.

자탄가는 개인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삶의 비애와 울분을 노래하고 있다. 구여성의 「자탄가」·「부녀자탄가」·「일생회상가」·「여자소회가」 등이 있다. 화전가는 삼월 삼짇날 화전놀이를 가서 짓거나 부르는 노래로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축가는 생일이나 축수의례 등 특별히 축하할 만한 날을 위해 만든 노래로 「수연경축가」·「회혼경축가」·「나의 증손 백일가」 등이 있다.

기행가는 여성의 출입이나 원거리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생겨난 양식으로 여행의 경로와 소감을 노래하고 있다. 「여행가」·「여행유람가」·「하회경치가」 등이 있다. 이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고향과의 이별을 노래하는 것으로 「고향이별가」·「붕우사모가」·「남매이별가」 등이 있다. 열녀가는 정절을 지킨 여인을 노래한 것으로 「열녀가」·「춘향가」·「망부가」 등이 있다.

[안동의 내방가사]

현대에 들어 내방가사의 전승이 중단되거나 약화되고 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안동 역시 그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시에서는 내방가사를 보존·전승하고, 나아가 가사의 창작력을 이어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1997년 안동시에서는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를 발족하여 해마다 내방가사경창대회를 주최하고 가사모음집을 발간하고 있다. 처음에는 안동의 내방가사를 중심으로 하였지만 지금은 그 범위를 확대하여 2008년 현재 전국적으로 185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지역의 여성들이 내방가사경창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2008년 6월 10일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회장 이선자)에서는 제12회 전국내방가사경창대회를 개최하였다. 최우수상은 「여름휴가가」를 경창한 임정숙이 받았으며, 우수상은 권옥순(「숭례문 탄식가」, 안동시 풍산읍), 창작우수상은 고영필(「봉선화가」, 포항시 효자동), 특별상은 서혜숙(「새류가」, 영덕군 인량동), 장려상은 박명임(「애향가」, 안동시 송현동)·권순주(「소회가」, 대구시 신천동)·김노대(「나의회고다」, 안동시 금곡동), 인기상은 권남이(「부아가」, 대구시 수성동) 등이 각각 수상하였다.

1. 「계녀가(誡女歌)」

「계녀가」라고도 불리는 이 가사는 이용경이 짓고, 이사화(안동시 서후면)가 제공하였다. 양반 가문에서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혼인 후 시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교훈을 담고 있어서 「계녀가사(誡女歌辭)」라고도 한다. 비슷한 내용의 가사가 경상북도에서만 수백 편 이상 발견되었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영남 지역에서 혼인하는 딸에게 「계여가」를 직접 짓거나 대물림으로 두루마리를 만들어 물려주는 것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축의 천계지벽 민생어인 되어서라 근부곤모 깊은은덕 진손이 남녀로다 오행으로 기운받아 인의예지 성품타서 청명할사 이목구비 삼강오륜 가졌으니 만물중에 신령하다 행지가 조심이야 남녀가 다를소냐 세상에 비겨앉아 나의말씀 자세듣고 참고하라 우리집을 볼작시면 삼백년 좋은문호 세세문장 명필이요 부모님전 효행이며 동기종반 우애돈독 친척구고 화락하니 뉘아니 칭찬하리 슬프도다 흥망성쇠 뉘라서 없을손고 을축년 풍우후에 산천이 변경되고 고목이 황락하고 수목이 변경되니 안팎노인 사환이며 집집이 소년참상 단취일동 좋은문호 차차로 이산되니 변화하던 건너터는 육토여몽 초공제라 년년시운 극심하여 동도로 나려와서 수십년 지나다가 불원천리 이건하니 천운을 어찌하리 망극하신 우리부모 춘초탄산 영결하고 근존에 만년유택 산성못 모시니 불효한 나의인생 만번죽어 속애할까 슬전에 자공늦어 만득에 여아얻어 금은보화 공주같이 너를길러 못쓸것이 자정이라 한가지도 교훈없어 적만탄산 이고촌에 견문이 있을손가 그럭저럭 보낸세월 방면이 다쳤구나 무무한 너의체질 신체만 숙성하여 여기저기 구혼하니 월노인연 명령없이 가지마라 가라고 하시거든 의복남누 추치말고 의복호사 용모단장 꾀를받은 근본이라 놀음에도 조심하고 본대없이 담소마라 구고전 꾸중할때 대책하면 발명되고 웃고보면 충효된다 잘못을 사과하고

동동촉촉 거행하며 밤이면 늦게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방이차지 않으신가 묻자온후

무슨음식 하오리까 무슨일을 먼저할까 영역히 묻자올때 언어를 나직나직 가래침도 밷지마라 개와닭을 차지마라 앞만보고 다니면서 백사를 주밀키로 알뜰이 하였어라 어느부모 좌정없이 자식자부 미워하리 미움도 제게있고 귀염도 제게있다 가지가지 물어보고 낱낱이 시킨대로 위격없이 하지마라 아해야 비오고 달밝거던 이것내여 손에들고 글씨는 얼굴본듯 사연은 말들은듯 잠시위안 될것이라.

2. 「숭례문 탄식가」

제12회 전국내방가사경창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권옥순의 작품인 「숭례문 탄식가」는 2008년 2월 10일 소실(燒失)된 국보 제1호 숭례문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내방가사이다. 이 가사는 작자가 매스컴을 통하여 숭례문의 화재 현장을 보고 문화재를 잃은 안타까움과 후손으로서 조상들의 유산을 지키지 못한 죄송함, 그리고 앞으로 숭례문이 다시 잘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숭례문 탄식가」는 현대에 지어진 것으로 여성의 문학적 창작력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가사의 소재가 여성의 추억이나 일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것임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자년 이월십일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보일호 숭례문에 비보소식 화재지일 오호애재 어찌할고 명광이 거룩하고 동방에 빛난저력 사기청청 영원하리 천만수요 믿었건만 어제날로 곱던자태 오늘날에 흔적없네 망극지통 어이할고 무슨소회 그리많아 허무하게 가시는고 장안백성 일천간장 누수흘러 한강수라 한순간에 재가되어 만백성에 탄식일다 조문객이 줄을잇고 국화꽃이 송이송이 숭례혼을 달래련듯 어린아이 혼신갈력 동동촉촉 글을지어 부치오니 아름있나 소복단장 한여인의 살풀이춤 처량하다 사물패가 상복입고 굿을하니 아름있나 애고답답 어이할고 숭례문에 옛모습은 한줌재로 자취없고 막막아득 불금일다 사모역역 생각하니 일일역역 통분애통 아연실색 석별일세 숭례문에 극한극란 태산고봉 쌓인일은 평지풍파 막막하다 방성호곡 바이없고 녹녹애탄 어이할고 비참한 저광경을 어이감내 하단말가 숭례문에 혼령있어 한잔술 흠향하고 한줄글을 올리오니 경천하여 들으리까 만백성의 축원발원 일각삼추 지성인데 우리역사 숭례문이 영결종천 웬말인가 앙천통곡 땅을치니 산천초목 다놀란다 육백년 역사자료 국보일호 문화재를 불길속에 보내다니 만백성에 일렴충성 축원발원 부족했나 망극지통 불감일다 눈에삼삼 어찌할고 일각이 여삼추라 하늘같은 숭례문을 허수허망 못보내고 만백성의 가슴속에 길이길이 묻었으니 육신이 찢어진듯 하늘땅이 뒤눕는듯 태산같은 너의공적 헤아림이 부족하고 경비허수 죄스럽다 인생한번 죽어지면 다시올길 없지만은 우리역사 국보일호 숭례혼이 있거덜랑 악몽같은 지난풍파 바람결에 소멸하고 인간세계 떠났다가 원형복귀 되는그날 옛모습을 갖추어서 새세상에 태어난날 만백성에 축하받고 만반진수 차려놓고 축원발원 빌거들랑 우리나라 대한민국 천추만대 지켜다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