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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향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992
한자 退溪鄕約
영어음역 Toegye Hyangyak
영어의미역 Toegye Village Charter
이칭/별칭 예안향약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진영

[정의]

1556년(명종 11) 퇴계 이황이 예안의 향촌 교화를 위해 작성하였던 자치 규약.

[개설]

퇴계향약은 향촌 교화의 절실한 필요에서 예안의 재지 사족들에 의해 추진되고 마련되었다. 따라서 퇴계(退溪)뿐만 아니라 일찍이 농암(聾巖) 이현보(李賢寶)도 향약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농암은 예안의 풍속이 아름답지 못함은 민의 유망(流亡)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씨향약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농암의 뜻은 생시에는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 그의 뜻에 따라 후손과 퇴계, 재지 사족의 공론으로 실현되었다.

[내용]

퇴계향약은 30여 개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약의 일반적인 성격인 하층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와 통제보다는 사족 자신들의 유교적 생활규범의 확립과 수령의 행정에 대한 시비 엄금, 그리고 하층민에 대한 무단적 행위에 대한 규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자기 규제를 통해 향촌 사회의 안정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퇴계향약은 사족의 향촌 지배 기구인 유향소를 통해 실질적인 기능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것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퇴계연보(退溪年譜)」에는 “이때 나라에서 향도지령(香徒之令)이 있어서 행해지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퇴계의 제자인 금난수(琴蘭秀)는 약조를 향사당(鄕射堂)에 걸어 두고자 하였으나 고을 사람들의 견해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이 거두어들여서 보관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1598년에 다시 문집에서 그 내용을 베껴 향사당에 게시하여 선생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고 하였다.

[변천]

퇴계향약은 1603년 퇴계의 제자인 북애(北厓) 김기(金圻)에 의해 덕업상권·예속상교·과실상규·환난상휼의 4강목을 갖춘 향약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김기향약은 영남 지역에서 실시되는 향약의 모범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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