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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806
한자 權泰浩
영어음역 Gwon Tae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근현대인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작곡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03년연표보기
몰년 1972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경력 평양 숭실전문학교 음악교사

[정의]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성악가이자 동요 작곡가.

[활동사항]

권태호는 1903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에서 목사인 권중한(權重漢)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선교사 부인에게서 풍금을 배우기 시작하여 15세 때는 안동교회 성가대의 지휘도 맡았고, 때로는 독창도 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그는 1924년에 일본 나카노[中野]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성악을 전공하였는데, 후에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과 동기이기도 하다.

도쿄[東京]에서 세 차례나 독창회를 가진 권태호는 요코하마, 고베, 오사카, 교토 등지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1930년 귀국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39년 모교의 교수로 초빙되어 도쿄로 건너가 일본 고등음악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광복 후 대구에서 음악 학원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성악과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 부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1972년 고향인 안동시 예안면에서 별세하였다.

[저술 및 작품]

작품으로는 「꽃피는 삼천리」, 「조선의 아들」, 「봄나들이」,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봄 오는 소리」, 「대구시민행진곡」, 「경북 도민의 노래」, 「경주 시민의 노래」, 「결혼 축하의 노래」, 「승리의 노래」, 「호국군제백육연대가」 등 다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56년 제1회 경상북도 문화상과 1960년 제1회 대구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9.16 [활동사항] [상훈과 추모] 수정 <변경 전>1925년에 일본 나카노[中野] 음악학교에 입학하여/1931년 귀국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40년 모교의 교수로 초빙되어/1960년에 제1회 대구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변경 후>1924년에 일본 나카노[中野] 음악학교에 입학하여/1930년 귀국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39년 모교의 교수로 초빙되어/1956년 제1회 경상북도 문화상과1960년에 제1회 대구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이용자 의견
권** 오류가 심하고 부정확한 정보로 되어있으니, 현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수정되어 제시된 내용으로 교체해주시기 바랍니다.
  • 답변
  •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내용 보완이나 오류 사항 수정이 아닌 경우 수정증보 시 일괄 처리합니다. 감사합니다.
2013.09.12
권** 전반적으로 오류가 심하고 부정확함으로, 보다 정확하고 상세한 내용은 '내가 쓰는 백과'에 올릴 예정이나 일단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권태호 관련자료에 제시된 수정내용대로 바꾸어야 할 줄 압니다.
  • 답변
  •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 검토 후 간단한 오류 사항은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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