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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754
한자 李中麟
영어음역 Yi Jungrin
이칭/별칭 진백(振伯),운포(雲圃),황산(潢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용계마을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용계마을지도보기
성별
생년 1838년연표보기
몰년 1917년연표보기
본관 진성
대표경력 선성의진 부장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이중린(李中麟)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진백(振伯)이며, 호는 운포(雲圃)·황산(潢山)이다. 1838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용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17년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의 거병 움직임과 더불어 안동 지역 여러 곳에서도 의병 봉기를 위한 통문이 돌았는데, 그중 예안통문이 첫 번째의 것이다. 이중린은 1896년 1월 예안통문에 의해 결성된 선성의진에서 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때 대장은 향산 이만도(李晩燾)가, 선봉장은 이인화(李仁和)가 맡았다.

1896년 2월 중반 무렵 1차 선성의진이 해산되자, 이중린은 자신의 토지를 팔아 군자금을 마련한 뒤 청량산을 근거지로 하여 의병을 모아 부하들을 엄격한 규율로 이끌어 2차 선성의진을 정비하였다. 또한 영양 지역의 김도현을 중군으로 초빙하여 전투력을 강화하고 인근 지역과 연합 의진을 형성, 함창의 태봉에서 관군을 맞아 전투를 벌였지만 패하고 말았다. 이중린은 다시 청량산으로 들어가 전열을 갖추었으나 이후 2차 선성의진의 주도권은 이인화에게로 넘어갔다.

[상훈과 추모]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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