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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742
한자 李源赫
영어음역 Yi Wonhy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0년연표보기
몰년 1968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신간회 서울지부 중앙집행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원혁(李源赫)은 1890년 10월 21일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이원혁은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일청영어학교(日淸英語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곧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 후 시대일보사를 경영하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지향하는 잡지인 『조선지광(朝鮮之光)』을 간행하는 등 언론을 통한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

1927년 6월 10일 신간회 서울지회 설립대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고, 7월 23일 제1회 집행위원회 서기장에 선출되었으며 12월 선전부 총무간사가 되는 등 줄곧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 인사들은 조선민중대회를 준비하였으나 허헌(許憲)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이원혁은 동지들과 함께 모임을 열고 검거된 학생 전원 석방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작성하여 신간회 중앙본부와 지회 및 각 언론사에 보내고, 같은 해 12월 13일 권동진(權東鎭)홍명희(洪命熹) 등 10인의 이름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같은 활동으로 체포된 이원혁은 1931년 4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4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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