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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79
한자 金龍煥
영어음역 Gim Yonghwan
이칭/별칭 여현(汝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7년연표보기
몰년 1946년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경력 의용단 경상북도 서기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현(汝見)이다.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종손으로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손자이다. 1887년 천년불패의 땅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묘도 이곳에 있다.

[활동사항]

김용환은 할아버지 김흥락의 영향을 받아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고자 1908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하여 김현동(金賢東)과 함께 적정(敵情) 탐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1911년에는 김상태(金尙台) 의진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11년 경상북도 순흥 상단곡 전투에서 김현동이 부상을 당하자, 그를 업고 예천군 유천면 중평리로 돌아왔다. 또 만주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거액의 군자금을 제공하였다가 일본 경찰에게 세 번이나 체포되어 고초를 치렀다.

1919~1920년경 김용환김원식(金元植)과 함께 만주 망명길에 올랐으나, 신의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다시 안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921년에는 의용단에 가입하여 경상북도 지단(支團)의 서기로 활약하였다. 의용단은 김찬규(金燦奎) 등이 만주 길림의 군정서(軍政署)와 연결되어 군자금을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독립군 지원 단체였다.

주로 경상도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의용단은 경상북도 안동을 비롯하여 영천(永川)·군위(軍威)·영일(迎日)과 경상남도 창녕(昌寧) 등지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친일 부호들의 외면으로 인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1922년 12월 28일 김용환은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다** 김용환은 의성 김문의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으로 일제 강점기에 항일 독립운동을 하면서 종가의 땅과 가옥 등 현재 가치로 300억에 달하는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투전판을 전전하면서 노름으로 위장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심지어 딸이 시집갈 때 시댁에서 보낸 장농값까지 독립운동에 바치고 딸이 친정 어머니가 가져온 농을 들고 가야야 했다 2018.12.27
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더럽게 살아남은 일제앞잡이들이
이 나라 이땅을 아직 유린하고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으니 통탄스럽습니다.
고맙고 의로운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 나라를 바르게 잡아야 할 좋은때 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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