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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74
한자 金璉煥
영어음역 Gim Yeonhwan
이칭/별칭 김연환(金鍊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79년연표보기
몰년 1947년연표보기
본관 의성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기중(器仲), 호는 학운(鶴雲)이다. 187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파리장서 의거에 참여한 김양모(金瀁模, 1850~1935)가 아버지이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활동사항]

김연환은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탈당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시(奉天市) 소남문(小南門)에서 천성여관(天城旅館)을 경영하면서 국내와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그러면서 무장 투쟁에 필요한 폭탄을 제조하여 만주 일대의 독립군에게 제공하는 동시에 국내에도 이를 제공하다가 1919년 9월 15일 천성여관에서 비밀리에 제조하던 폭탄이 폭발하여 일본 경찰로부터 수배를 받게 되었다. 이에 김연환은 중국 상해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가 자금 모집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김연환은 1920년 1월 김창숙(金昌淑)과 김법(金法)을 만나 모금 계획을 수립하고, 국내로 잠입하여 경상북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대구에서 영양 출신 권태일(權泰馹)에게 임시정부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가담하라고 권유하였으며, 서건수(徐健洙)라는 인물도 포섭하여 임시정부에 원조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1920년 2월 27일에는 경상북도 상주 상하리에 사는 류경원(柳慶元)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만난 정재룡(鄭在龍)·강원석(姜原錫)에게 임시정부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로 인해 1920년 2월 29일 체포되어 1922년 6월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김연환은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의 무관학교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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