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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67
한자 金秀洛
영어음역 Gim Sura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자 김수락은 국망의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중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김수락은 경기도에서 재봉기한 이강년 의진(義陣)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강년 의진은 1908년 5월 변학기·백남규·성익현 등과 함께 경상북도 봉화군 서벽에서 연합하였다. 이곳에 대규모로 의병들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강년 의진의 남하에 있었다. 이강년은 군대 해산 이후 다시 거의하여 경상북도·강원도·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의 토벌이 강화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의진을 재편하고자 경기도 양평에서 태백산 줄기를 따라 당시의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운기리로 이동하였다. 이에 봉화군 서벽에서 의병을 모으고 있던 백남규·권용일이 정예병을 이끌고 와서 이강년을 맞이하여 함께 봉화군 서벽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강년 의진의 근거지가 산간벽지이고 험로이기 때문에 내왕하기가 어려워 많은 이들이 의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수락은 산중에까지 찾아가 일본군의 상황을 정탐하여 알려 줄 뿐만 아니라 군수 물자를 계속적으로 공급하여 이강년 의진이 의병항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김수락에 대해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김공은 중한 물망을 한 몸에 지닌 선비로서, 평소의 강론이 군신부자 간의 큰 윤리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가정에서 이어받은 것과 사우 간에 젖어든 것이 모두 의리의 실용이 아닌 것이 없었다. 왜놈들이 약속을 어기고 무엄한 짓을 하자, 김공은 임금의 치욕을 씻을 일을 하려 했는데 공(이강년)이 의병을 일으켜서 기세가 크게 떨친다는 말을 듣고 재산을 내어 비밀이 돕기를 마지않았다.”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김수락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군수 물자를 지속적으로 지원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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