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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37
한자 李逢春
영어음역 Yi Bongchun
이칭/별칭 근회(根晦),학천(鶴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종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성별
생년 1542년연표보기
몰년 1625년연표보기
본관 진성
대표관직 성균관직강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근회(根晦), 호는 학천(鶴川). 할아버지는 이한(李漢), 아버지는 처사인 이희성(李希聖), 어머니는 양근김씨(楊根金氏)로 어모장군 김세필(金世弼)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봉춘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중후하고 성실했으며 배움에 부지런하고 행실이 검약하여 사림에 추중이 되었다. 처음에 권대기(權大器)에게 배우고 뒤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를 거쳐 전적에 이르렀으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오랫동안 친환(親患)을 돌보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1581년 부친상을 당한 후 벼슬에 뜻이 없어 오랫동안 산림에 묻혀 살았고, 영덕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양하였다. 일찍이 “내 성품이 소탈하여 세상과 맞지 않고 임학(林壑)이 내 분수에 맞는 것이니, 구차하게 세상과 영합하는 일을 나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벼슬하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었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으로 피란간 왕가(王駕)가 아직 돌아오지 않자 경상감사 한효순(韓孝純)이 임시로 신령군수(新寧郡守), 예천군수, 대구군수에 임명하였다. 그 뒤 성균관직강이 되었으나 스스로 세인과 어울리지 못함을 알고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가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봉춘은 성품이 대범하고 관대하여 평생 동안 이론을 제기해 높은 체하거나 시속을 따라 지조를 더럽히는 일이 없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학천집(鶴川集)』 1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안동부 동쪽 우역산(牛嶧山) 오향(午向)의 언덕에 있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용암사(龍巖寺)에 제향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1.25 이봉춘의 외가쪽 가계 추가 기술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외조부가 정계근(鄭繼根)으로 나온다.' 라는 문장을 추가로 기술함.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성이씨파보에는 외조부가 양근김씨 김세필로 나옵니다. 이에 두 가지 기록을 함께 병칭하도록 하겠습니다. 2012.01.25
토* 글쓴 배종석 보아라 국조문과방목을 보면 이봉춘의 외조는 정계근이라네, 제발 역사왜곡은 말아라.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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