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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23
한자 禹倬
영어음역 U Tak
이칭/별칭 천장(天章),탁보(卓甫),단암(丹巖),백운당(白雲堂),문희공(文僖公),역동선생(易東先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단양군
성별
생년 1262년(원종 3)연표보기
몰년 1342년(충혜왕 복위 3)연표보기
본관 단양
대표관직 성균좨주

[정의]

고려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탁보(卓甫), 호는 단암(丹巖)·백운당(白雲堂). 단양우씨(丹陽禹氏)의 시조 우현(禹玄)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우천규(禹天珪)이다.

[활동사항]

우탁은 1278년(충렬왕 4)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고 1290년(충렬왕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었다. 당시 영해에는 팔령(八鈴)이라 이름하는 신사(神祠)가 있었는데 백성들이 그 영험을 믿고 팔령신을 극진히 받들고 있었으며 자주 제사지내고 재물을 바쳐 폐해가 막심했는데 우탁은 팔령신을 요괴로 단정하고는 과감히 신사를 철폐하였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었으며 재임 중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통간하자 백의(白衣) 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진 채 대궐로 들어가 극간을 하였다. 곧 향리로 물러나 학문에 정진했으나 충의를 가상히 여긴 충숙왕의 여러 번에 걸친 소명으로 다시 벼슬길에 나가 성균좨주로 치사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예안에 은거하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우탁은 당시 원나라를 통해 수용되고 있던 새로운 유학인 정주학(程朱學)을 깊이 연구해 후학들에게 전해주었다. 예컨대 정이(程頤)가 주석한 『역경(易經)』의 「정전(程傳)」은 처음 들어왔을 때 아는 이가 없었는데 방문을 닫아걸고 연구하기를 달포만에 터득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고려사(高麗史)』「열전(列傳)」에 따르면 역학(易學)에 더욱 조예가 깊어 복서(卜筮)가 맞지 않음이 없다고 기록될 만큼 아주 뛰어난 역학자였다. 때문에 주역이 중국에서 동쪽으로 왔다는 뜻으로 ‘역동선생(易東先生)’으로 불렸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상현록(尙賢錄)』이 있다. 기타 『초학계몽편(初學啓蒙編)』, 『도수편(徒酬編)』, 『역론(易論)』, 『역설(易說)』, 『가례요정편(家禮要精編)』 등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시조 2수와 몇 편의 시가 전하고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희(文僖)이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발의로 1570년(선조 3) 예안현역동서원(易東書院)이 창건되었다. 역동서원은 1871년(고종 8) 훼철되었다가 1966년 복원되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현재 안동시 송촌동 안동대학교 구내로 이건하였다. 구계서원(龜溪書院)에도 배향되었는데, 구계서원은 이후 영남대학교 구내로 옮겨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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