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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20
한자 孫洪亮
영어음역 Son Hongryang
이칭/별칭 죽석(竹石),복천부원군(福川府院君),정평공(靖平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성별
생년 1287년(충렬왕 13)연표보기
몰년 1379년(우왕 5)연표보기
본관 일직
대표관직 판삼사사

[정의]

고려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일직(一直). 호는 죽석(竹石). 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낸 손방(孫滂)이다. 본래의 성은 순씨(筍氏)였으나 현종의 이름을 휘하기 위해 5대조 손응(孫凝) 때 손씨(孫氏)로 고쳤다.

[활동사항]

손홍량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충선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충숙왕충혜왕 양조에 벼슬하고 1348년(충목왕 4) 첨의평리(僉議評理)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1349년(충정왕 1) 추성수의동덕찬화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功臣)에 봉해지고,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거쳐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다. 이듬해 복천부원군(福川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351년 치사(致仕)하였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로 피난할 때 중도에서 평복으로 공민왕을 맞아 치하를 받았다. 1364년 난의 평정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서 공민왕으로부터 궤장(几杖)과 자신의 초상화를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목은(牧隱) 이색(李穡) 등 여러 학자들이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정평공실기(靖平公實記)』가 남아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명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평(靖平)이며,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타양서원(陀陽書院)에 제향되었다. 1744년 9월 타양서원에서 조금 떨어진 일직면 송리리 입구에는 손홍량 유허비(孫洪亮遺墟碑)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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