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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08
한자 裵善源
영어음역 Bae Seonwon
이칭/별칭 성함(性涵),수간(守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종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성별
생년 1808년연표보기
몰년 1880년연표보기
본관 흥해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 흥해(興海). 자는 성함(性涵), 호는 수간(守磵). 퇴계의 급문제자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배한주(裵翰周),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이다. 둘째아버지는 배익주(裵翼周), 둘째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이다. 12세 때 중부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배선원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영민하였다. 16세에는 서포(西圃) 권재성(權載成)의 문인이 되었는데, 후에 권재성의 사위가 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으며 문하에서 기천(杞泉) 권승하(權承夏), 이재(頤齋) 권연하(權璉夏) 등과 교유하였다.

26세 때 퇴계학맥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인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에게 나아가 문인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특히 만산(萬山) 류치엄(柳致儼), 신암(愼庵) 이만각(李晩慤)과 긴밀하게 교유하였다. 48세 때 류치명이 호군으로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존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가 도리어 대사간 박내만(朴來萬)의 탄핵에 의해 지도(智島)에 유배되었을 때 모시고 같이 갔으며, 1861년(철종 12) 류치명이 작고했을 때에는 심상(心喪)을 하였다.

1871년(고종 8)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세도정권의 조정에서는 벼슬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벼슬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던 고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에 집을 짓고 편액을 ‘수간(守磵)’이라 하고서 학문을 연마하며 여생을 보냈다. 자식들의 교육에 엄격하였는데 예컨대 「정훈차록(庭訓箚錄)」에서 자식들에게 “동무들과 함께 놀러 갔을 때 잡담을 하지 말고 서책에 관해 논하라.”라고 훈계하고 있다. 1880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배선원은 퇴계학파의 고을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퇴계의 성리설(性理說)을 수학하였고, 또 권재성, 류치명 등 퇴계학파의 중요 인물에 나아가 문인이 되었다. 문집 중의 「장석기회(丈席記誨)」에서 볼 수 있듯이 류치명 문하에서 배울 때 스승이 했던 말 가운데 중요한 교훈을 기록하기도 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수학하였다. 중년 이후에는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에 침잠하여 특히 이기설(理氣說)을 연구하였는데 주자(朱子)와 퇴계(退溪)의 주장을 정론으로 보았으며 퇴계의 입장에서 율곡의 학설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수간집(守磵集)』이 있으며, 저술로 『사칠변집증(四七辨輯證)』 2권이 전한다. 문집의 초고는 배선원 사후 상자 속에 보관되어 있다가 장자 배침천(裵枕泉)과 조카인 배목거(裵木居)가 원고를 모아서 책을 엮었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 뒤에 손자 배종직(裵鍾稷)과 그의 종질 배경환(裵璟煥)이 자금을 대고 증질손 배덕환(裵德煥)이 일을 주간하여 1974년에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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