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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44
한자 金烋
영어음역 Gim Hyu
이칭/별칭 자미(子美),겸가(謙可),경와(敬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97년(선조 30)연표보기
몰년 1638년(인조 16)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관직 강릉참봉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미(子美)·겸가(謙可), 호는 경와(敬窩). 아버지는 김시정(金是禎),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김륵(金玏)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휴는 1617년(광해군 7) 폐모론을 주장하였던 정조(鄭造)가 경상도안찰사로 부임하여 예안(禮安)을 순시하던 길에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들러 자기 이름을 원록(院錄)에 기재하였는데, 그때 이를 보고 분개하여 유적(儒籍)을 더럽히는 자라며 그 이름을 지워버렸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성리학의 연구에만 힘썼다. 그 뒤 조경(趙絅)의 간곡한 권유와 천거로 강릉참봉에 임명되었다.

[학문과 사상]

스승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는 한편, 서책을 도시(圖示)하고 분류, 정리하는 등 우리나라 서지학(書誌學)의 기초를 마련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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