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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32
한자 金澤龍
영어음역 Gim Taeknyong
이칭/별칭 시보(施普),와운자(臥雲子),조성당(操省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47년(명종 2)연표보기
몰년 1627년(인종 5)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관직 영월군수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시보(施普), 호는 와운자(臥雲子)·조성당(操省堂). 고조부는 첨정 김효우(金孝友), 아버지는 김양진(金楊震),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안동김씨(安東金氏)로 내금위 김려광(金礪光)의 딸이다. 고조부 김효우가 안동부 예안현 한곡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현 태곡리)에 터를 잡은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활동사항]

김택룡조목(趙穆)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다. 1566년에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그 해에 국상을 당하자 이황에게 사상(私喪)과 국상(國喪)의 관계, 상례의 절차를 물은 뒤에 시행하였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다. 1588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저작이 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임진왜란 이후 경독관(耕督官)이 되어 전후의 농경을 장려하여 백성을 정착시키는 데 힘썼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영월군수에 이르기까지 여러 벼슬을 지냈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 낙향하여 향촌을 교화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1611년에는 정인홍(鄭仁弘)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황 양 선생을 모함하는 상차(上箚)를 올리자 도내에 통문을 돌려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모이도록 하고 동주(洞主)의 임무를 수행하여 변무하는 소를 올리기로 결정하였다.

[학문과 사상]

김택룡이황의 문하에 나아가서도 독실히 공부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문장에 뛰어나 여러 사람들의 추숭을 받았다. 또 “초탈(超脫)만을 마음으로 삼고 학문 공부로써 알차게 함이 없으면 그 폐단이 혹 선(禪)에 이를 것이니 이것으로 마음을 세우고 『역(易)』의 소위 ‘경이직내의이방외(敬以直內義以方外: 경으로써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바깥을 반듯이 한다는 뜻)’로써 스스로 힘써야 한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는데 이는 전형적인 유자(儒者)의 일상적 수양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조성당집(操省堂集)』이 있다. 문집 맨머리에 세계도(世系圖)와 연보(年譜)가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 이후 선무이등(宣武二等)과 청난일등(淸難一等)의 훈작을 받았다. 예안의 한천사(寒泉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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