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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29
한자 金璁
영어음역 Gim Chong
이칭/별칭 명보(明寶),중휘(仲輝),오헌(辶+亏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성별
생년 1633년연표보기
몰년 1678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지제교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명보(明寶)·중휘(仲輝), 호는 오헌(辶+亏軒). 아버지는 김광술(金光述)이고,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임경진(任慶進)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총(金璁, 1633~1678)은 1652년(효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여 1662년(현종 3)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다. 1663년 승문원정자·저작(著作)·박사를 거쳐 1666년(현종 7) 의금부도사·예조좌랑을 역임하였고, 1667년 옥구현감으로 외직에 나아갔다. 1673년(현종 14) 중앙 관직에 복귀하여 성균관직강·병조좌랑·사헌부지평·홍문관수찬·사헌부장령·사헌부집의·지제교(知製敎) 등을 역임하였다. 1678년(숙종 4) 차왜접위사(差倭接慰使)로 동래에서 일본 사신의 예경(禮敬)을 받았다. 그러나 임무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우연히 감기에 걸려 동래에서 병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오헌집(辶+亏軒集)』 4권이 있다. 시문에 능하여 「창랑대기(滄浪臺記)」 등 다수의 시문을 남겼으며, 옥구현감 시절에 지은 여러 편의 기우문(祈雨文)은 우국애민의 충심이 엿보인다.

[묘소]

1679년(숙종 5) 9월 방잠산 선산 곁에 임시로 매장하였다가, 1708년(숙종 34) 봉성현(鳳城縣) 태자산(太子山)으로 이장하였다. 약 80년 뒤인 1788년경 김총의 5세손인 김진유(金震儒)가 광(壙)에 물이 차 있는 꿈을 꾸고 묘를 파 보니 정말로 꿈과 같아서 묘소를 안동 북녕산(北寧山)으로 다시 옮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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