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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57
한자 金建銖
영어음역 Gim Geonsu
이칭/별칭 공립(公立),만회헌(晩悔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봉화군
성별
생년 1790년(정조 14)연표보기
몰년 1854년(철종 5)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관직 승정원우부승지

[정의]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립(公立), 호는 만회헌(晩悔軒). 김경한(金景漢)의 현손, 현감을 지낸 김택동(金宅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정언을 지낸 김희성(金熙成), 아버지는 서추(西樞) 김재인(金在仁),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의 후손인 홍종해(洪宗海)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건수는 1830년(순조 30) 정시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한 후 승문원 정자에 임명되었고, 이어 1834년 명릉별검(明陵別檢)에 제수되었다. 헌종이 즉위하자 2월에 성균관전적을 거쳐 예조좌랑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왕명을 받들어 칙사(勅使)를 영접하였다. 그 뒤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홍문관수찬, 장악원판사, 현풍현감 등을 두루 거쳤다.

현풍현감으로 재직할 때 창녕, 청도, 양산, 영산 4군을 함께 다스렸다. 당시 이들 군에서는 세금으로 내는 쌀인 세미(稅米)를 밀양에 속해 있던 삼랑포로 운송하여 한양으로 가는 운반선에 실었는데, 수로로 쌀을 운송하던 다른 군들과 달리 현풍과 청도 두 군은 지리적인 장애 때문에 육로로 운송하였다. 그런데 밀양군수가 세미 수송 문제를 빌미로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에서 현풍과 청도 두 군의 세미에 대해 종종 시비를 걸고는 하였다.

밀양군수의 탐학을 안 김건수는 바로 삼랑포로 달려가 담당 관리를 혼내고는 감영에 직보를 하여 일을 바로잡았다. 이 일로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으나 김건수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문을 닫고 독서에만 몰두하였다. 1847년(헌종 13) 다시 지평에 제수된 데 이어 홍문관응교, 김해부사,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만회헌집(晩悔軒集)』 6권 3책이 있다. 5세손인 김정진(金正鎭)이 쓴 후기에 따르면 원래 8권 4책이었으나 뒤에 6권 3책으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순흥(順興) 우수곡(愚叟谷) 오룡동(五龍洞, 현 경상북도 영주시 진위면 마산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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