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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36
한자 權柱
영어음역 Gwon Ju
이칭/별칭 지경(支卿),화산(花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주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성별
생년 1457년(세조 3)연표보기
몰년 1505년(연산군 11)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동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호는 화산(花山). 증조부는 권심(權深)이고, 할아버지는 권항(權恒), 아버지는 권이(權邇), 어머니는 송원창(宋元昌)의 딸이다. 아들이 광흥창봉사 권질(權礩)이다.

[활동사항]

권주는 1474년(성종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481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482년 승정원주서를 역임했고, 이후 강경문신(講經文臣)으로 활약하였다. 1489년 공조정랑 재직 중 질정관(質正官)이 되어 요동(遼東)을 내왕했고, 같은 해 11월 지평이 되었다. 1492년 6월 사간원헌납이 되었으며 1493년 부응교에 승진하였다. 같은 해 12월부터 다음 해 8월에 걸쳐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대마도(對馬島)를 내왕하였다. 귀환 뒤 사헌부로부터 사행(使行) 때 체통을 잃었다고 탄핵을 당했으나 용서받았고, 곧 응교에 승진하였다.

1494년 12월 직제학 표연말(表沿沫), 전한 양희지(楊熙止)와 함께 「대행왕행장(大行王行狀)」을 찬진하고, 1495년 3월 다시 「대행왕시책(大行王諡冊)」을 지어 올렸으며 같은 해 8월에 집의가 되었다. 1498년 7월 통훈대부에 오르면서 직제학지제교겸경연시강관을 역임하였다. 1499년 2월에 찬진된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같은 달 홍문관부제학으로 올랐다. 승정원우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1501년 1월에는 도승지에 승진되고, 같은 해 윤7월 충청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에 걸쳐 동지중추부사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3년 4월 동지중추부사로서 동지성균관사를 겸임했고, 같은 해 10월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4년 윤4월 정축일 갑자사화(甲子士禍)가 발발하면서 1482년(성종 13) 당시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尹氏)의 사사(賜死) 때에 승정원주서로서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같은 달, 경진(庚辰)일에 사사시켜야 한다는 전지가 있었으나 유순(柳洵), 김수동(金壽童) 등이 “권주는 당시에 주서로 단지 승지의 지휘에 따랐을 뿐이다.”라는 계(啓)를 올려서 권주는 사형을 면하고 장형을 받은 뒤 평해(平海)로 귀양보내졌다. 그러나 1505년 6월 폐비 윤씨의 사사 때에 사약을 받들고 간 일이 거듭 논죄되면서 결국 사사되었고 권주의 형제자매도 아울러 외방에 부처되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화산유고(花山遺稿)』가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06년(중종 1) 9월 신원되어 의정부우참찬겸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다시 장례를 치르도록 허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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