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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196
한자 姜酇
영어음역 Gang Chan
이칭/별칭 자진(子鎭),성건재(省愆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성별
생년 1647년(인조 25)연표보기
몰년 1729년(영조 5)연표보기
본관 진주
대표관직 첨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진(子鎭), 호는 성건재(省愆齋). 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아버지는 강각(姜恪),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참봉 홍남욱(洪南勖)의 딸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병자호란을 피해 당시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에 살았다.

[활동사항]

강찬은 안동부 춘양현 법전리(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정양(鄭瀁)에게서 수학하였으며, 그 뒤 윤증(尹拯)을 사사하였다. 평소 학문에 전념하였고, 평생 『소학(小學)』을 높이 받들었으며 예학(禮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일찍이 양친을 모두 여의어 밤마다 애통하면서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추우나 더우나 성묘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부모 사후에는 큰어머니 심씨(沈氏)를 어머니처럼 섬기면서 밤낮으로 문안 인사를 드렸고 ‘외출할 때 반드시 알리고 돌아와선 반드시 찾아뵙는다[出必告反必面]’는 『논어(論語)』의 덕목을 몸소 행하였다. 또한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늘 큰어머니를 먼저 맛보게 하였다. 1727년 수직(壽職)으로 부호군(副護軍)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우리나라 제현들의 문적을 분류별로 모아 편찬한 『현인문적(賢人文蹟)』 3권과 『성건재유고(省愆齋遺稿)』 4권이 있다. 『성건재유고』 중 편지글 「상명재윤선생(上明齋尹先生)」은 김집(金集)의 『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 김장생(金長生)의 『의례문해(疑禮問解)』·『가례집람(家禮輯覽)』, 신의경(申義慶)의 『상례비요(喪禮備要)』, 『예기(禮記)』, 『주자가례(朱子家禮)』 등을 근거로 하여 예설(禮說)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이다. 「서시아배(書示兒輩)」는 학동들에게 학문을 하다가 의문 나는 곳이 있으면 지나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세히 살펴서 알아야 된다는 것과 밤을 새워가며 글을 읽는 것은 건강에 해로우니 적당한 수면을 취할 것 등 7개항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독성당화첩후지(獨醒堂畵帖後識)」는 외할아버지가 태백산 밑에서 당화(唐畵) 한 권을 구해서 모사한 신선도(神仙圖), 산수도(山水圖), 화조도(花鳥圖) 등이 99폭이나 되었는데, 진기한 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다고 칭찬하면서 가보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글이다. 「봉송송월이공금강지행(奉送松月李公金剛之行)」은 이시선(李時善)이 금강산 유람을 할 때 준 글로써, 칠십 고령에도 유람과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시선의 기개를 치하하고 유람도 학문의 일종이라고 칭찬한 글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삼의곡(三宜谷)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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