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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997
한자 豊山金氏旌閭閣
영어음역 Pungsangimssi Jeongnyeogak
영어의미역 Monument House of Pungsan Gim Cl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규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각|정려각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793년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개설]

풍산김씨 정려각(豊山金氏 旌閭閣)은 류홍춘(柳弘春)의 부인 풍산김씨(豊山金氏)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교남지(嶠南誌)』에 “남편(류홍춘)이 관의 곡식을 축냈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욕된 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김씨는 혈서를 써 상경하여 쟁명(錚鳴)을 울리고 진상을 조정에 고하여 남편의 누명을 푼 다음 자결하였다. 그 후 1793년(정조 17) 정려가 내려졌다.”는 글이 실려 있다.

[위치]

풍산김씨 정려각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초입부에 위치하고 있다. 하회2리로 큰고개[大峴]라 부르는 곳이다. 정려각은 서쪽 도로변에 세워져 있고, 북동쪽으로 10m 정도 떨어져 김씨·남씨 열녀비(金氏·南氏 烈女碑)가 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2차선 도로 중앙에 주차권을 발행하는 작은 부스가 설치되어 있고, 바로 인접하여 대형 주차장과 목석원이라는 장승공원이 있다.

[형태]

단칸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현판에는 ‘열녀학생류홍춘처유인풍산김씨지려(烈女學生柳弘春妻儒人豊山金氏之閭)’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풍산김씨 정려각과 관련하여 의장소(義庄所)라는 것이 있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일제강점기까지도 길흉사의 경비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의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장소는 어려운 마을 주민들을 도울 목적으로 설립·운영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한다.

류홍춘이 세금을 내지 못해 안동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세상을 떠난 뒤 부인인 풍산김씨가 따라가자, 이는 가난이 마을의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라면서 이런 일을 막기 위한 장치로서 의장소를 만들었다. 의장소는 서애 류성룡의 8세손으로 병조판서를 지낸 류상조(柳相祚)와 그의 사촌동생 예조참판 류이좌(柳台佐), 류이좌의 아우 고성군수 류철조(柳喆祚) 등 세 형제가 조직하였다. 학서(鶴棲) 류이좌의 문집인 『학서집(鶴棲集)』 권9에 「의장절목서(義庄節目序)」가 실려 있는데, 특히 의(義)를 강조하면서 이런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관청의 법을 따르지 않으면 의가 아니요, 종족 간에 화목치 않음도 의가 아니며, 성이 나 싸우고 재판하여 관청을 번거롭게 하는 것도 의가 아니다.(官令不遵非義也宗族不睦非義也忿爭鬪訟以煩官廳非義也)” 류이좌가 단적으로 지적한 위의 구절은 오늘날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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